16일 오전 국민은행 본점 13층 회의실.9시에 시작된 경영협의회가 10시도 안 돼 끝났다.

평소 12시까지 이어지던 데 비하면 매우 이례적이다.

그러나 이날 회의는 안건에 대한 논의가 제대로 이뤄질 수 없는 분위기였다.

노조가 회의실 앞에서 8시30분부터 2시간 남짓 '행장 물러가라'는 구호를 외치며 시위음악을 틀어댄 탓이다.

노조는 이미 확정된 행장의 연임을 여전히 반대하고 있다.

금융계에선 그러나 노조의 속셈이 다른 데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7% 수준의 임금인상이다.

은행들의 '공동 임금 및 단체협약에 관한 협상'에서 결정된 가이드라인 3.2%의 두 배를 웃도는 숫자다.

노조는 실적 호전에 따른 정당한 요구라고 하지만 회사 측은 도무지 들어줄 수 없는 숫자라며 한숨을 내쉬고 있다.

국민은행 노조의 요구만 무리한 것이 아니다.

우리은행 노조는 6.1% 인금인상안을 주장하고 있다.

공단협의 가이드라인 3.2%에 지난해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위해 고통분담 차원에서 동결했던 2.9%를 더한 숫자다.

우리은행 노조 역시 수익이 급증한 만큼 열심히 뛴 직원들에게 회사가 보상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입장이다.

'신의 직장'이라는 산업은행의 노조위원장 선거에선 '최상위 임금수준 회복'이란 구호까지 등장했다.

연봉 1억원이 넘는 직원의 비율이 시중은행의 5배에 이르는데도 말이다.

노조의 주장처럼 은행의 수익성이 개선된 것은 사실이다.

은행들은 올 상반기에만 10조원 가까이 순이익을 올렸다.

작년 상반기보다 1조9000억원가량 늘어난 것이다.

그러나 그 것이 어디 노조원(은행원)들이 열심히 일한 결과만일까.

우선 LG카드 주식매각이익 등 일회성 이익이 5조원에 육박하고 자동화기기 이용수수료 등 각종 수수료수입이 또한 5조원에 이른다.

펀드나 방카슈랑스를 취급할 때 우월적 지위를 누리고 있는 것도 한몫했다.

외환위기 이후 은행 숫자가 대폭 줄어들어 경쟁이 약화된 데도 이유가 있다.

은행 노조가 이런 상황을 외면하고 무리한 요구만을 거듭한다면 은행장 연임 등 어수선한 분위기를 틈 타 '잇속 챙기기'에만 급급하다는 비난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박준동 경제부 기자 jdpow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