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디자이너들은 마케팅 컨셉트에 맞는 디자인을 요구받았다.하지만 이제는 반대다.기업들은 디자이너의 아이디어에 맞춰 제품을 개발하고 마케팅 활동을 벌인다.디자인을 빼놓고는 마케팅을 이야기할 수 없게 된 것.

LG전자 휴대폰 마케팅전략팀의 김주연 과장(29)은 이 같은 기업의 트렌드를 몸으로 보여주는 사람이다.그녀의 직업은 디자이너이자 마케터.미국의 유명한 로드아일랜드 디자인대학(리즈디)을 졸업하고 2003년 LG전자 디자인센터에 디자이너로 입사했지만 지금은 전형적인 마케팅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모든 디자인에는 스토리가 있어요.제품마다의 디자인 스토리를 고객들에게 직접 전달하고 싶어 작년 11월에 마케팅팀으로 옮겼죠.제가 공부한 디자인 아이디어를 훨씬 더 가까이서 소비자들에게 전할 수 있어서 신나고 재미있습니다." 김 과장은 기약도 없이 본업을 떠나 있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마케터로 변신한 그가 처음 맡은 업무는 프라다폰의 디자인 스토리를 파는 일.이동통신 업체들과 최종 소비자들에게 디자이너의 시각에서 프라다폰의 디자인과 유저 인터페이스(UI)의 컨셉트를 설명,'빅히트'에 기여했다."이제 소비자들은 휴대폰의 카메라 화소수에는 아무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아요.대신 자신이 소유한 제품이 어떤 아이디어에서 탄생했는지를 더 궁금해하죠.이동통신 업체 바이어들도 마찬가지예요.프레젠테이션에서 단순히 외관이나 기능을 설명하는 대신 제품 뒤에 숨어 있는 스토리를 이야기해주니 다들 눈이 초롱초롱해지더군요."

김 과장은 "디자인은 연애와 비슷하다"고 말했다.외관의 아름다움뿐 아니라 오랫동안 발산하는 매력을 만들어야 한다는 점에서다.그는 "아무리 얼굴이 예뻐도 성격이 안좋고 풍기는 매력도 없다면 외모에 대한 호감은 20분도 가지 않는다"며 "디자인도 감성,편리함,튼튼함,신뢰성 등 많은 매력을 담고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런 면에서도 디자인과 마케팅은 통해요.흔히들 마케팅도 연애와 같다고 하죠.소비자의 마음을 얻어 지갑을 열게 하고,데이트를 하듯이 반복 구매를 일으키고,나아가 제품을 사랑하고 열광하게 만드는 일이잖아요."

김 과장의 독특한 이력은 입사 때부터 시작됐다.당시 LG전자는 제품 디자인에 상당한 공을 들이고 있었다.하지만 아무리 좋은 디자인이라도 고객에게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는 게 문제였다.디자인도 알고 소통 능력도 갖춘 김 과장이 빛을 발한 이유다.원어민 수준의 영어로 해외 디자인 공모전,바이어 미팅 등에서 LG의 디자인 컨셉트를 전달하는 일을 맡았다.

성과는 기대 이상이었다.LG전자가 해외의 권위있는 디자인 공모전에서 상을 휩쓸기 시작했다.지난해에는 독일 레드닷으로부터 '올해의 디자인팀'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지금은 디자이너로서의 감성을 마케팅에 접목하고 있지만 앞으로 기업 경영의 모든 분야에 디자인을 적용해보고 싶어요.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것이 디자인이니까요."

유창재 기자 yooco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