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 대왕이 1418년 즉위한 뒤 무려 7년간 극심한 가뭄이 계속됐다.

기아로 인한 백성들의 고통은 이루 헤아릴 수 없었다.

세종 3년 구휼 사업의 일환으로 광화문 네거리에 큰 가마솥이 걸렸다.

세종이 임금의 양식인 내탕미를 꺼내 죽을 쑤라고 명령했기 때문이었다.

어느날 현장에 나갔던 세종은 피골이 상접한 몰골로 죽을 먹는 백성들을 보고 눈물을 흘렸다.

궁궐에 돌아온 뒤 경회루 옆에 초가집을 짓되 궁궐 안의 낡은 재목을 사용하라고 지시했다.

세종은 초가집에서 2년4개월 동안 먹고 자며 정무를 살폈다.

백성들과 고통을 함께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신하들과 왕비는 건강을 해칠 것을 우려,정전에서 집무할 것을 애원했다.

그렇지만 세종은 "백성들이 굶어서 죽어 나가는데 임금이 어찌 기와집 구들장을 지고 편한 잠을 잘 수가 있더냐.나는 나가지 않을 것이니라"며 거절했다.

32년의 재위 기간 중 세종은 영의정 황희,좌의정 맹사성을 20여 년 이상 중용하는 등 어질고 능력 있는 신하를 가까이 두며 조선 시대의 전성기를 구가했다.

백성들을 보호하기 위해 대마도를 정벌하고 육진도 설치했다.

그의 업적과 행실을 되돌아보면 "세종은 오직 백성들을 위해서 정치를 했다"는 방송작가 신봉승씨의 평가에 공감하지 않을 수 없다.

김영석 연세대 언론홍보대학원장은 시오노 나나미가 쓴 '로마인 이야기'를 분석,로마 리더들의 특징을 5개 항목으로 요약한다.

우선 지적인 능력을 갖고 있어야 한다.

강인한 체력은 기본이다.

백성들을 이해시킬 수 있는 설득력,이른바 커뮤니케이션 능력도 중요하다.

목표 달성을 위해서는 참고 또 참는 자기 절제가 뛰어나야 한다.

어떤 난관이 있더라도 밀어붙일 수 있는 강력한 추진력도 긴요하다.

이런 점에서 세종은 로마 제국의 초석을 세운 카이사르나 아우구스투스와 공통점이 많다.

단지 세종에게 부족했던 것은 건강 문제였다.

치세 내내 당뇨병과 창(瘡) 등으로 병석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까닭이다.

그렇지만 발명 및 작곡 능력은 전 세계 어떤 지도자에게서도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독보적이었다.

이 같은 리더의 요건은 현재라고 해서 크게 달라질 것은 없다.

제17대 대통령 선거일이 2개월여 앞으로 다가왔다.

함성득 고려대 교수는 차기 대통령은 명령자이기보다는 조정자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국정 비전을 달성하기 위해 일관된 방향성과 설득력을 갖고 다양한 이해관계를 절충하며 설득해 타협을 이끌어 내는,연성(軟性)의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는 것이다.

구체적인 덕목으로 비전 제시 능력,민주적 정책 결정 및 실행 능력,도덕성,인사 및 위기관리 능력을 꼽고 있다.

여기에다 몇 가지를 추가하자면 무엇보다도 시장경제 체제에 대한 확고한 지지와 믿음을 손꼽지 않을 수 없다.

시장 경제야말로 경쟁을 통해 자원을 가장 효율적이고 생산적으로 활용할 수 있게 만드는 메커니즘인 까닭이다.

새롭게 나타날 기술과 생활 방식에 대한 통찰력을 갖는 등 미래를 내다볼 줄 아는 안목도 절실하다.

성숙한 인격과 책임감,합리성도 결코 양보하기 싫은 조건임은 물론이다.

최승욱 논설위원 swcho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