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의 마지막 주말밤을 위하여 MBC가 영화 '주먹이 운다'를 준비했다.

2005년 개봉한 영화 '주먹이 운다'는 류승완.류승범 형제가 의기투합하여 만든 영화다.

곽경택 감독의 '챔피언'(2002)에서 권투는 주인공의 성공을 보장하고 야망을 충족시켜주는 수단이었다.

류승완 감독의 '주먹이 운다'에서는 권투의 의미가 한결 소박해 진다.

출구없는 삶의 두 주인공에게 희망의 불꽃이자 존재의 의미로 다가온다.

두 주인공이 맞붙는 장소도 챔피언 타이틀전이 아니라 신인왕전이다.

그들은 여기서 반드시 상대를 꺾고 이겨야 했지만 경기가 끝난 뒤에는 패자도 웃는다.

상투성을 뒤집는 결말은 오히려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최선을 다하는 자세야말로 삶의 진정한 주인이 되는 첩경이다.

이 작품은 두 캐릭터에 관한 영화다.

태식(최민식 분)은 왕년의 아마추어 메달리스트였지만 지금은 거리에서 분풀이용 매를 맞아주는 대가로 돈을 받아 연명한다.

강도짓으로 붙잡혀 복역 중인 상환(류승범 분)은 권투로 인해 삶의 목표를 처음 갖게 된다.

두 사람은 영화 내내 만나지 않다가 마지막에야 링 위에서 대면한다.

그들을 둘러싼 거칠고 비루한 주변 환경 묘사가 인물들의 유대감을 강화시켜 주는 장치다.

태식이 아내와 언성을 높여 말다툼하는 동안 상환은 교도소 내 식당에서 다른 재소자와 주먹질을 한다.

상환이 갇혀 있는 경찰서는 시골장터 같고 감옥은 난장판이다.

태식이 '인간 샌드백' 일을 하는 도시의 광장도 수많은 인파들로 가득하지만 삶의 온기가 없는 공간이다.

유독 권투도장만은 밝고 화사하며 나름의 정의가 살아 있는 공간으로 묘사돼 있다.

감독은 두 주인공에게 나란히 동정어린 눈길을 던진다.

관객들은 어느 한 쪽을 일방적으로 응원할 수 없게 된다.

수차례 경고된 태식의 '펀치 드렁크' 증세가 마지막 순간에 나타났더라면 흔한 권투영화의 결말을 답습했을 것이다.

펀치 드렁크 증세는 앨프리드 히치콕 감독의 스릴러에서 경찰의 역할과 유사하다.

관객의 긴장감을 끌어올리지만 이야기 전개에는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하는 장치다.

화면의 질감은 주인공의 삶처럼 거칠다.

링 위의 두 선수가 싸우는 모습은 핸드헬드(들고찍기)로 처리돼 실제 시합 같은 느낌을 준다.

특히 인위적인 연출이 배제돼 두 선수는 진짜 경기처럼 쉽게 정타를 때리지 못한다.

류승범은 악다구니만 남은 반항아의 면모를 훌륭하게 표현했다.

다만 관련 없는 두 인물을 교차편집 양식으로 진행하는 구성은 너무 평면적이다.

한경닷컴 뉴스팀 newsinf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