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라비아 레스토랑 '페트라' 운영하는 팔레스타인人 3형제

"한국만한 비즈니스 무대 없으니까요"

[주한 외국인 I♥KOREA] 경영학 박사 중단하고 한국서 음식점 차린 이유?
지난 27일 오후 서울 이태원동 녹사평역 인근에 위치한 아라비아 레스토랑 '페트라'.

이곳 주인인 야세르 가나엠(37)과의 인터뷰가 예정된 한 시간을 넘기며 오후 6시까지 이어졌다.

가나엠씨는 잠시 시계를 쳐다보더니 "30분 뒤에는 우리가 식사를 해야 하는데…"라며 말꼬리를 흐렸다.

인터뷰를 끝내고 싶다는 얘기로 들렸다.

하지만 본뜻은 그게 아니었다.

"지금은 라마단(이슬람교의 금식 기간)이어서 해가 지는 6시30분이 되면 '아침'을 먹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라마단이 뭔지는 알았지만 저녁 식사를 '아침'이라고 얘기하는 바람에 기자도 '껄껄' 웃고 말았다.

한국인에게 아랍 문화가 얼마나 생경한 것인지,얼마나 양 지역간 교류가 없었는지 그대로 보여주는 순간이었다.

또 하나 기자를 놀라게 한 것은 가나엠씨의 다양한 글로벌 경험과 국적이었다.

그는 출신으로 보면 팔레스타인 사람이다.

태어난 곳은 쿠웨이트다.

여기서 고등학교를 다니다 인도로 건너가 영국계 고등학교와 대학을 졸업했다.

1995년엔 호주로 건너가 퀸즐랜드공대에서 경영학 석사(MBA) 학위를 땄다.

2001년 같은 학교 박사과정 첫 학기를 다닐 즈음,한국에 머물던 호주 친구가 한국 관광을 꼭 한번 오라고 권했다.

호주와 요르단 국적의 가나엠씨가 한국과 인연을 맺게 된 계기였다.

그는 "어릴 적 삼성전자와 골드스타(현 LG) 브랜드를 많이 보고 자라 한국은 낯선 나라는 아니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한국의 자연이 어떻고,도시 풍경이 어떻고,영화 같은 대중문화는 어떤지 전혀 알지 못했다.

그럴 기회 자체가 없었다.

그에게 한국은 신비롭고 뭐라고 규정하기 힘든(ambiguous) 그런 나라였다.

하지만 막상 한국에 와보니 속된 말로 '필(feel)'이 딱 꽂혔다.

부지런하고 적극적이고 모험심 가득한 한국 사람들과 거리의 분위기가 그를 매료시켰던 것.MBA 출신답게 '뭔가 배울 게 있는 나라,잘하면 비즈니스에서도 성공 가능성이 높은 나라'로 다가왔다.

결국 박사과정을 중단하고 한국에서 새로운 삶을 개척해 보기로 마음을 굳혔다.

"나로서도 학업을 중단한다는 사실에 마음 아팠지만 비즈니스에 대한 영감을 얻을 수 있고 한국 생활이 행복할 것이란 확신이 들었습니다."

가나엠씨는 호주 국적을 십분 활용,LG화학과 대림,한국외대 등에서 영어 강사로 한국 생활을 시작했다.

그의 말을 빌리자면 향후 비즈니스를 위한 '종잣돈 마련 프로젝트'였다.

기회는 드디어 2003년에 찾아왔다.

미국이 이라크와 전쟁을 벌인 것이 그에겐 결정적 호기였다.

이라크와 요르단에서 전후 복구를 위한 중고차와 중고 건설장비 수요가 폭발했다.

정국 불안으로 1년 이상 비즈니스를 지속하진 못했지만 한국산 중고차와 중고 건설장비,에어컨 등을 이들 지역에 수출해 상당한 재미를 봤다.

경제적으로 한숨 돌리고 나자 다른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뭔가 아랍과 한국을 이어주는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스쳤다.

그는 "양 지역간 석유 수출입 등 경제교류는 활발한 데 비해 문화적 이해도는 걸음마 수준"이라며 레스토랑을 열게 된 동기를 설명했다.

2004년 이태원 본점을 연 데 이어 같은 이태원 지역에 분점을 하나 더 냈다.

MBA 출신 음식점 사장님이 된 것이다.

페트라 손님의 30%는 영어 사용 국가 출신,또 다른 30%는 아랍인과 유럽,남미 사람들,나머지 40%는 한국인이라고 한다.

배타적인 느낌을 주는 아랍 민족의 음식이지만 전 세계인들이 즐기기에 딱 좋은 맛이었다.

그래서인지 장사도 생각보다 잘됐다.

내친 김에 회계사로 쿠웨이트에서 일하던 동생 칼리드(28)까지 불러들였다.

한국에서 함께 사업해 보자고 설득했다.

형제는 역시 통하는 구석이 있었다.

칼리드도 이내 한국 생활을 좋아하게 됐고 페트라의 단골이었던 한 한국 여성을 1년간 '공략', 작년 12월 결혼에 골인했다.

현재 서강대에서 한국어를 배우고 있는 칼리드는 머지않아 한국에서 MBA 공부를 해볼거라며 큰 눈을 반짝거렸다.

맏형인 바심(39)도 4개월 전 그를 돕기 위해 한국을 찾았다.

삼형제가 한국에서 다시 뭉친 것이다.

레스토랑 경영을 통해 쌓은 인맥도 큰 도움이 되고 있다.

가나엠씨는 단골인 한 방송국 직원의 소개로 4개월 전부터 'KBS 아라비아 라디오'에서 매주 한 시간씩 아랍어로 한국 관련 뉴스를 전하는 '서울 파노라마'를 진행하고 있다.

애청자가 1만~1만5000명은 될 거라며 어깨를 으쓱한다.

중동지역 전문가 풀(Pool) 육성과 사회적 관심을 끌어올리기 위해 외교통상부가 추진 중인 '중동 소사이어티'로 관심을 넓히는 계기가 됐다.

기회만 주어진다면 적극 참여해 볼 생각이다.

"아랍인에 대한 좋지 않은 선입견이 있다는 점을 압니다.

아프가니스탄 인질 사태 때도 그런 시선을 받았죠.하지만 어떡합니까.

양 지역의 상호이해가 일천해서 그런 것인 걸요.

앞으로 케이스 바이 케이스로 오해와 불신,편견들을 극복해가는 데 기여하고 싶습니다."

장규호 기자 daniel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