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화가 없다면 가을도 없다고 말해야 옳을 것이다.

정말이지 국화가 빠진 이 땅의 가을 풍경은 삭막 그 자체일 거다.

그 옛날 학교 다닐 적에 가을소풍을 가다 보면 무수하게 마주치는 꽃들이 있었다.

그 꽃들 이름을 알고파서 밭에서 일하고 나오시는 아저씨를 붙들고 물어보면…"<황대권 '야생초 편지'>

글은 이렇게 이어진다.

"들국화여.아저씨 이것은 꽃이 보랏빛이고 저것은 꽃이 조그맣고 노란데요? 들국화랑게 그리여! 고개를 갸웃거리며 지나갈 밖에.그렇다.

가을 이맘 때 산과 들에 피는 야생국화는 모두 들국화라고 부른다.

산국 감국 해국 쑥부쟁이 개미취 구절초.그나저나 국화차는 참말로 몸에 좋다."

가을이다.

때 아니게 덥고 비는 잦아도 하늘은 높고 들과 산은 노랗고 하얀 국화로 가득하다.

국화는 이른 봄 싹이 터 봄과 여름을 견디고 모든 것이 저무는 가을에 피는 꽃이다.

때문인가.

중국 고전 '종회부(鍾會賦)'엔 하늘(위를 향함),땅(노란색),군자의 덕,높은 기상,신선 음식 등 다섯 가지 특징을 지닌다고 적혀 있다 한다.

매화 난초 대나무와 함께 사군자(四君子)로 일컫는 것이나 조선 세종조 학자 강희안이 '양화소록(養花小錄)'에서 9품의 꽃 중 1품으로 삼은 것도 이런 특성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국내에선 삼국시대부터 재배돼 백제 왕인박사가 청·황·적·백·흑색 국화를 일본에 전했다고 돼 있다.

국화가 건강에 좋다는 기록도 많다. 꽃만 쓰거나 혹은 꽃이 피었을 때 줄기째 잘라 말려 끓인 물을 마시면 머리가 맑아지고 눈도 밝아진다는 것이다.

욕조에 풀어쓰면 신경통과 피부병에 효험이 있고,한지에 싸서 옷장에 넣어두면 좀이 슬지 않는다고도 한다.

22일부터 10월28일까지 인천 강화 옥토끼우주센터에선 '가을사랑 국화축제'가 열리고,10월 중순부터는 미당 서정주 시인의 고향 전북 고창에서 고창국화축제(10월18일~11월11일)가 펼쳐진다.

미당의 '국화 옆에서'가 일러주듯 국화는 인내와 끈기의 상징이다.

이 가을, 국화 옆에서 조용히 지난 삶을 돌아보고 앞날을 계획해보는 건 어떨까.

박성희 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