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대법원은 국내 최초의 담배소송에서 "흡연과 폐암 발병 사이에 역학적 관계는 인정되지만 폐암과 후두암이 흡연으로 인한 것이라는 점을 인정할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담배회사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나 지난 6월엔 20여년간 흡연한 소방관이 폐암으로 숨진 사건에 대해 평소 근무시 유독가스에 노출된 점만을 강조해 폐암과 업무 간에 인과관계가 있다고 인정한 것은 잘못이라는 판결을 내렸다. 같은 사안을 놓고 입장이 달라지는 법원 판결에 대해 의학계는 진실이 왜곡됐다고 비판하고 있다.

폐암은 분명 흡연과 깊은 관계가 있다. 세계폐암학회는 폐암의 90%가 직.간접 흡연에 의한 것이라고 밝히고 간접흡연까지 철저히 규제해야 폐암사망률을 낮출 수 있다고 경고했다.


◆흡연 양상에 따라 폐암 패턴 바뀌어

폐암은 낱낱의 입자가 작은 소세포성과 그렇지 않은 비(非)소세포성으로 나뉜다. 비소세포성 중 가장 흔한 게 편평상피암과 선암이다. 편평상피암은 크고 납작하며 기도 입구에 가까운 기관지에 생기며 초기에 기침 가래가 나와 상대적으로 쉽게 발견된다. 반면 선암은 얇고 넓게 퍼진 형태로 기도 깊숙이 나타나며 림프절 간 뇌 뼈 부신 등으로 잘 전이돼 치료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낮고 발견이 늦어져 치료시기를 놓칠 위험성이 높다.

미국 터프츠 뉴잉글랜드의료원 게리 스트라우스 박사는 "1975년부터 2003년까지 미국 암등록 데이터에 기재된 30만7797명의 폐암진단 환자를 분석한 결과 1990년대 후반 선암 환자의 비율은 47%로 1970년대 후반에 비해 62% 증가했다"고 밝혔다. 이는 필터담배가 1964년 64%의 시장점유율을 보이다가 근년에 98%로 올라간 점,1980년대부터 순한 담배를 찾는 흡연인구가 늘어난 점과 연관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순한 담배는 니코틴 함량이 적어 흡연자가 더욱 깊게 담배연기를 들여마시게 된다"며 "이럴 경우 폐 기관지 깊숙한 부분에 저농도의 니코틴 및 타르, 니트로사민 등의 발암물질이 전달돼 선암성 폐암이 유발되는 조건이 형성된다"고 말했다.

강진형 가톨릭대 강남성모병원 종양내과 교수는 "국내에서도 미국과 마찬가지로 선암이 증가하고 편평상피세포암이 감소하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며 "순한 담배를 피우는 젊은 연령층이나 간접흡연에 노출된 여성에서 폐 가장자리에 생기는 선암이 늘어나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국내에서 폐암 종류별 비율은 소세포암 17%,편평상피암 32%,선암 45%,대세포암 및 기타 6% 등으로 추산되고 있다. 1980년대 전반까지만 해도 편평상피암이 가장 많았으나 순한 담배,필터담배,여성흡연,누적된 간접흡연 영향,대기오염(화석연료 가스),서구화된 식생활과 운동부족 등의 영향으로 보다 악성인 선암이 늘고 있다는 분석이다.


◆표적항암제,선암 돌연변이 유형에 따라 효과 달라

선암과 기관지폐포암은 표피성장인자수용체(EGFR) 유전자의 돌연변이에 의해 발생하는 비율이 편평상피암보다 훨씬 높다. 한.중.일.대만.홍콩 등 아시아인은 20~30%,백인은 10%에서 이런 요인에 의해 선암이 발병한다.

아스트라제네카의 '이레사'와 로슈의 '타세바'는 EGFR의 활성을 억제해 암세포 증식을 저지하는 약이다. 먹는 약으로 부작용이 적고 암의 진행을 막아 치료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연 약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동안의 연구 결과,이레사는 아시아인.여성.비흡연경력 조건의 선암 환자에 대해 65~70% 수준의 치료반응(암이 더 이상 크지 않음)을 보이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같은 선암이라도 라스(ras)유전자나 상피세포의 돌연변이에 의한 것은 발병경로가 달라 이런 약에 듣지 않는 것으로 확인됐다.

정종호 기자 rumb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