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김상진 감독의 새 영화 '권순분여사 납치사건' 시사회에 갔다가 충무로 파워 1위를 10여 년간 고수해온 강우석 감독을 만났다.

강 감독은 이 영화의 돈줄을 쥔 시네마서비스(투자·배급)의 수장이기도 하고,김상진 감독의 영화적 스승이기도 하다(김상진 감독은 강우석 감독의 연출부 출신이다).서울극장 앞에 서 있는 그의 모습을 보고는 문득 충무로에 입성하게 된 재미난 이야기가 생각났다.

충무로에서 가장 힘 센 감독에게도 새끼 시절은 있었다.

영화에 대한 열망 때문에 영문학과를 중퇴한 청년 강우석은 사회 부조리를 다룬 영화를 꿈꾸던 감독 지망생이었다.

하지만 그가 처음 맛본 상업영화는 아이러니하게도 정인엽 감독의 '애마부인 2'(1984년)였다.

사회 부조리와 별 상관없는 '애마부인 2' 연출부에 들어가서 의상을 담당했다.

지금이야 의상 스태프가 따로 나뉘어 있지만 당시만 해도 연출부에서 배우들의 의상을 챙겨야 했다.

'애마부인 2'의 주연 여배우는 글래머 스타였던 오수비였는데,노출 많은 장면을 찍다가 정인엽 감독이 '컷'을 외치면 강우석 감독이 옷이나 담요를 준비하고 있다가 덮어주는 역할도 해야 했다.

"러브신 때 여배우를 노골적으로 보기 그래서 슬쩍 보곤 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런 것에 무감각해졌다"고 그는 말한다.

조감독 생활을 하면서 호시탐탐 연출 기회를 노리던 그는 1988년 결혼하기 위해 상경한 농촌 총각들의 이야기를 다룬 코믹 드라마 '달콤한 신부들'(1989년)을 찍는다.

재미있는 것은 멜로 영화를 많이 연출한 정인엽 감독의 조감독 출신이라는 꼬리표 때문인지 충무로에선 '달콤한 신부들'을 에로 영화로 안 사람들이 많았다는 것이다.

신혼부부의 그렇고 그런 영화로….

사회성을 가미한 코미디 '달콤한 신부들'은 꽤 신선한 느낌으로 다가왔고,이후 '투캅스'와 '마누라 죽이기' 등의 강우석식 코미디 영화를 통해 흥행 감독으로 우뚝 섰다.

2000년대에 들어서는 '공공의 적'으로 새로운 형사물을 선보였으며 '실미도'로 1000만 관객 시대를 처음 열었다.

그는 감독뿐만 아니라 제작자로서의 면모도 과시했는데 그가 만든 영화제작·배급사 시네마서비스는 영화계의 핵이 되고 있다.

현재 강 감독은 '공공의 적'에서 설경구가 맡았던 형사 강철중의 캐릭터를 살린 영화 '강철중'을 준비 중이다.

부제는 '공공의 적 1-1'로 1편의 속편이라는 뜻이다.

역시 강철중 역에는 설경구가 캐스팅됐고,정재영 강신일 등의 배우가 함께 한다.

'박수칠 때 떠나라' '거룩한 계보' 등을 연출한 장진 감독이 시나리오를 맡아 코미디적인 요소와 감동적인 요소를 아우른다.

10월 중순 크랭크인을 앞두고 콘티 작업에 여념이 없는 강 감독은 자신이 힘들 때 항상 영화를 간절히 소망했던 '초심'을 떠올린다고 말한다.

이 '초심'이 10여년간 그를 충무로 파워 1위를 지키게 한 힘이 아닐까.

이원 영화칼럼니스트·무비위크 취재팀장/ latehope@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