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입자 60만명 돌파했는데 실시간 방송 안돼

방송ㆍ통신 밥그릇 싸움…법제정 올해도 넘길 위기

경기도 파주에 사는 이상민·윤주연씨 부부는 지난 주말 이틀간 무려 16시간이나 드라마를 시청했다.

회사 근무 때문에 놓쳤던 '환상의 커플'드라마를 '하나TV'에서 한꺼번에 정복한 것.하나TV로 대변되는 인터넷TV(IPTV)가 등장하면서 가정 내 TV시청 문화가 크게 달라졌다.

'모래시계'를 보기 위해 퇴근길을 서두르던 풍경은 사라진 지 오래다.

대신 휴일이면 '프리즌브레이크''CSI 과학수사대' 등 밀린 인기 시리즈를 한꺼번에 섭렵하려는 드라마족이 대거 등장한다.

비디오나 DVD로 영화를 빌려보는 사람을 찾기도 쉽지 않다.

TV만 켜면 영화,애니메이션,요가 등 가족들이 원하는 프로그램을 마음대로 골라볼 수 있다.

인터넷TV 등장 1년 만에 가입 가구가 60만으로 늘어날 정도로 성장속도가 빠르다.

하지만 정작 우리나라 시청자들은 아직도 반쪽짜리 인터넷TV밖에 이용할 수 없다.

영국 프랑스 스페인 미국 캐나다 일본 등의 나라가 이미 수년 전부터 인터넷TV를 통해 지상파방송이나 위성·케이블 채널을 제공한 반면 우리나라는 법이 없다는 이유로 수년째 방송 서비스 접목을 미뤄왔다.

디지털강국이라는 우리 선전 구호가 인터넷TV를 돌아보면 부끄러워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인터넷TV 가입 가구 60만 돌파

최근 서비스 1주년을 맞은 하나로텔레콤의 하나TV는 가입자가 벌써 54만명을 넘어섰다.

KT도 지난달 스트리밍 방식의 인터넷TV 서비스 '메가TV'를 선보인 데 이어 이달에는 초고속인터넷 속도가 느린 사용자를 위해 다운로드&플레이 방식의 '메가TV' 시범서비스도 시작했다.

과거 주문형비디오(VOD) 가입자를 포함해 누적가입자도 7만명을 돌파했다.

하나로와 KT 가입자를 합치면 우리나라 인터넷TV 가입자는 벌써 60만명을 돌파했다.

홍콩의 PCCW가 IPTV 도입 3년간 65만 가입자 유치에 그쳤다는 점을 고려할 때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만큼 빠른 성장 속도다.

차세대 융합서비스인 인터넷TV를 기다리는 소비자가 얼마나 많은지 보여주는 증거다.

고화질 영상을 IP망을 통해 전송하는 IPTV는 기존 디지털케이블이나 위성방송에 비해 크게 진보된 기술이다.

전송대역폭의 제한이 거의 없어 HD 방송 채널을 대폭 늘릴 수 있는데다 양방향 방송 구현에도 탁월하다.

이미 하나TV와 메가TV는 방송 서비스뿐만 아니라 쇼핑,교육,게임,노래방 등 IP기술을 접목한 부가서비스를 제공 중이다.

동일한 IP기술을 사용하는 웹이나 무선인터넷과 접목한 융합 서비스도 조만간 대중화될 전망이다.

최근 KT,하나로텔레콤,LG데이콤 등은 소니의 가정용 게임기 PS3를 인터넷TV 셋톱박스로 활용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PC,가정용게임기,가전제품 등과 인터넷TV가 결합될 날도 머지 않았다.

◆반쪽짜리 인터넷TV

이탈리아와 캐나다는 이미 2002년부터 지상파나 위성채널을 결합한 인터넷TV를 도입했다.

2003년 인터넷TV를 선보인 프랑스는 이미 가입자가 200만명을 넘었다.

아시아지역의 일본,홍콩은 2003년부터,대만과 중국도 2004년,2005년 인터넷TV를 도입했다.

방송,통신 관련 법제도 정비도 빨라 영국은 이미 2003년 커뮤니케이션법이라는 통합법을 도입했다.

이를 토대로 대다수 국가들이 지상파나 위성,케이블 채널을 포함한 말그대로의 융합 서비스를 제공 중이다.

유독 우리나라만이 VOD 기반의 인터넷TV에서 멈춰있다.

실시간 방송이 빠져있다는 점에서 반쪽 짜리 융합서비스에 불과하다.

100메가(Mbps)대 초고속인터넷,이동형멀티미디어방송(DMB)에 이미 익숙해진 우리 소비자 눈높이를 만족시키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다.

무엇보다 대다수 국가들이 법제도 정비 이전에도 인터넷TV 도입을 막지 않은 반면 우리나라만이 진입 자체를 막아왔던 것도 후진적이다.

전응휘 녹색소비자연대 상임위원은 "산업 간 경쟁 논리 때문에 신규 서비스 도입 자체를 막은 사례는 세계에서도 유례를 찾기 어려운 일"라며 "소비자 선택권을 제한하는 것은 어떤 논리로도 명분을 찾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법 도입 올해도 넘기나

소비자 선택권 제한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날로 높아지고 있지만 인터넷TV 법 도입은 자칫 올해도 넘길 위기에 몰렸다.

7개나 되는 법안이 무더기 제출됐지만 의원들 간 시각차는 여전히 한 치도 좁혀지지 않았다.

지난 1월 발족한 국회 방송통신특별위원회는 10차례 회의까지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활동을 사실상 멈춘 상태다.

대선을 앞둔 각당의 후보 경선,이합집산 등 정치적 변수가 많아 후속 의사 일정조차 막연하다.

9월 정기국회가 마지막 기회다.

홍창선 열린우리당 의원은 "정파를 떠나 의원들의 상임위별로 의견이 엇갈려 합의가 쉽지 않은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수년간 논의해온 사안이라 정치권도 책임감을 갖고 결단을 내려야 할 시기"라고 강조했다.

인터넷TV 도입 논의가 공전하는 가장 큰 이유는 방송계와 통신계의 극명한 시각차 때문이다.

방송과 통신 기술 간 경계는 이미 사라졌지만 정부 조직이 나뉘어져 있고 산업도 떨어진 영역에서 경쟁하다 보니 자기 주장만 되풀이해왔다.

무엇보다 방송 통신 규제와 기구를 통합해야 하는 기본 철학에 대한 공유가 절대 부족하다.

국무총리실 산하 방송통신융합추진위원회가 인터넷TV 도입보다 기구통합을 먼저 제안한 이유도 이 때문이다.

정부 조직을 합쳐 서로 교류하다 보면 이해관계 조정 시간을 단축할 수 있다는 판단이다.

하지만 융추위가 제출한 기구통합법안은 법안심사소위에 상정돼 있을 뿐 구체적인 논의가 중단된 상태다.

통합의 한 주체인 방송위가 반대하는 것도 부담이다.

융합추진위원회의 관계자는 "기구 통합,인터넷TV 도입 등 대다수 문제에서 방송과 통신 진영의 뚜렷한 시각차만 확인했을 뿐"이라며 "인터넷TV 도입도 중요하지만 양 진영의 시각차를 좁히기 위해서는 기구통합도 서둘러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태훈 기자 taeh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