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 사이비 정치의식이 논란 촉발했을 가능성

흥행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심형래 감독의 SF영화 '디 워(D-War)'를 둘러싼 논란이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논란은 충무로 영화인과 평론가들이 '디-워' 흥행이 국수적인 애국주의의 결과라는 등의 비판을 제기하면서 시작됐다. 이에 반발한 일부 네티즌이 잇달아 반박 댓글을 올리며 '디 워'에 비판적인 영화인과 평론가들을 비난하면서 날카로운 대립각이 세워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상업영화에 대한 필요 이상의 혹평과,비평 자체를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태도 모두 바람직하지 않다"며 "'디 워' 논란이 한국영화계를 위한 발전적 고민의 계기가 되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영화계,'디 워'에 대한 비판 쏟아내

이달 초 이송희일 감독은 논란의 불씨를 당겼다. 그는 "'디 워'는 영화가 아니라 1970년대 청계천에서 마침내 조립에 성공한 미국 토스터기 모방품에 가깝다"며 "할리우드적 컴퓨터 그래픽과 미국 대규모 개봉 등 '디 워'를 옹호하는 근거의 핵심 축들은 박정희시대의 수출 역군에 대한 자화자찬식 뉴스와 아무런 차이가 없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김조광수 청년필름 대표도 '디 워'의 마케팅에 대해 '왜 사람들의 집단적인 감정을 자극하느냐. 지나친 애국주의는 곧 국수주의로 변질될 가능성이 있는 아주 위험한 일이다. 한국영화 치고 CG가 좋으니까 봐줘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디 워'에 대한 비판은 최근 방영된 TV 토론에서 극에 달했다. 문화평론가인 진중권 중앙대 교수는 '디 워'에 대해 '엉망진창''진짜 허술하다' 등의 혹평과 함께 "지금 현재 '디 워'에 관한 논의는 마치 황우석 교수 사태 때 벌어진 의사 소통의 제약과 마찬가지"라며 "누구도 '디 워'에 관한 반대 의견을 꺼내는 일에 모험을 감수해야 하는 상황이 정상인가"라고 주장했다.

◆네티즌 반발,영화계에 대한 불신으로 확산

이 같은 영화인들의 비판은 네티즌들의 거센 반발을 샀다. '정통 충무로 출신이 아닌 개그맨 출신 감독의 영화라서 무조건 깎아내리고 있다''미국 시장에 당당하게 진출하는 '디 워'에 왜 찬물을 끼얹나''누가 '디 워'의 작품성이 뛰어나다고 했냐' 등의 반박 댓글들을 쏟아냈다. 쉽게 말하면 맨손으로 일궈낸 아웃사이더인 심 감독의 성공을 충무로가 배아파하고 있다는 것.

이러한 반발은 점차 충무로와 평단을 공격하는 양상으로까지 확대되고 있다. 네티즌들은 영화인이나 평론가들이 '디-워'의 성공 요인으로 애국주의와 읍소 마케팅 등을 꼽고 있지만,그동안 충무로 역시 한국영화를 홍보하거나 스크린쿼터를 사수하기 위해 이런 치졸한 방법을 애용해왔다고 지적한다. 또 충무로가 생각하는 소위 주제의식이라는 것이 사이비 정치 의식에 불과하다는 반론도 없지 않다. 한 편의 상업 영화를 놓고 충무로의 선제 공격이 시작된 것부터가 같은 시기에 개봉된 다른 충무로 영화에 대한 일부 집단의 집착과 질시,심리적 반발 때문이라는 지적도 있다.

이 같은 반응의 근저에는 소위 '기득권'이라고 할 수 있는 충무로와 평단에 대한 깊은 불신이 깔려 있다. 한 영화계 관계자는 "관객들이 1990년대 이후 한국영화에 전폭적인 지지를 보내줬지만 자기 '밥그릇' 지키기에만 연연해온 충무로에 대한 깊은 배신감이 그 배경"이라고 분석했다. 한 네티즌은 "평단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던 임권택 감독의 '천년학'은 흥행에 완전히 실패했지만,혹평을 받았던 '트랜스포머'가 초여름 극장가를 평정한 것은 무엇을 의미하느냐"고 말했다.

◆건전한 논쟁으로 귀결돼야

사실 영화 한 편을 놓고 TV 토론까지 열리는 현상은 어떻게 보면 쉽게 이해하기 힘들다. 영화인들이 상업영화에 대해 작품성을 놓고 가혹한 혹평을 가하는 것이나,네티즌들이 영화에 대한 평가를 지나치게 확대 해석하는 것 모두 적절하지 않다. 구성이나 스토리는 미흡해도 충분한 볼거리를 제공했다면 그 것만으로도 상업영화로서의 가치는 사실 충분하다. '디 워'가 미국 상품의 싸구려 모조품이라고 하지만,이렇게 토스터기 모방 시도조차 없었다면 한국은 지금도 미국산 휴대폰이나 자동차를 쓰고 있을지도 모른다. 네티즌들도 맹목적 애국심 등에 함몰돼 아예 비평 자체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꽉 막힌 태도 역시 개선해야 할 점이다.

서욱진 한국경제신문 기자 ventur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