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보다 먼저 독과점 카르텔 제한 등 경쟁 촉진 정책을 실시해온 대부분의 선진국들은 정책 수립 및 법 집행 차원의 조사 기능과 심의 의결 기능을 따로 따로 분리해 놓고 있다.

이는 외부의 압력으로부터 심결의 독립성을 유지하고 전문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다.

영국은 공정거래 정책과 관련해 합의제 의사결정 기관인 '독점 및 합병위원회'와 법 집행 기관인 공정거래청을 각각 따로 두고 있다.

위원회에는 무역성 장관이 각계 각층에서 골고루 발탁한 20명의 위원을 두고 집행 당국인 공정거래청의 반경쟁행위 심사와 처분을 견제토록 하고 있다.

프랑스도 경쟁 당국은 경제부 아래의 총국 형태로 존재하고 독립위원회인 경쟁위원회가 전체적으로 경쟁 당국의 법 집행을 컨트롤하도록 했다.

위원회 구성도 학계 4인,업계 5인,정부 공무원 8인 등으로 안배해 다양한 이해관계가 반영될 수 있도록 했다.

1890년 셔먼법,1914년 클레이튼법과 연방거래위원회(FTC)법 등 세계에서 가장 먼저 공정거래 관련 법제를 갖춘 미국은 독립행정위원회인 FTC에 정책 수립과 사건 심사 및 의결 등을 맡기고 있다.

이와는 별도로 법무부 반독점국을 둬 위원회와 협력해 독점금지법 관련 형사사건과 민사사건을 처리한다.

미국이 사법권과는 별도로 이 같은 위원회를 둔 것은 경제활동에서 개별적인 거래행위가 자유 경쟁의 관점에서 용인될 수 있는지 여부를 판단하는 과제를 법원보다는 경제활동 실정에 밝은 전문가들에게 맡기는 것이 낫다는 판단에서다.

따라서 미국 FTC는 기업 경영에 밝은 전문가를 대거 위원으로 기용해 판단의 공정성을 꾀하고 있다.

5인의 위원 모두가 대통령의 영향권 아래 놓이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대통령이 임명하되 의회의 인준을 받도록 했다.

위원 9인을 아무런 견제장치 없이 대통령이 임명하고 상임위원 모두를 공정위 출신 관료로 채우고 있는 한국과는 대조적이다.

독일 역시 연방카르텔청에 경쟁 정책 수립과 사건 심결 등 권한을 집중시켜 놓고 있다는 점에서는 한국과 비슷하다.

하지만 기관의 위상은 천양지차다.

독일 연방카르텔청은 경제부 장관 소속 아래의 관청에 불과하다.

경제 부처의 다른 정책과의 조율을 통해 정부가 일관된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서다.

아울러 독점위원회라는 자문기관을 둬 견제토록 하고 있다.

이에 반해 한국은 공정위를 다른 경제부처와 동등한 지위를 누리는 장관급 중앙행정기관으로 위상을 한껏 높여 놓았다.

위원회 구성에서도 위원 임명에서 각계를 배려하거나(프랑스),의회의 견제를 받는(미국) 등의 조치가 없어 세계에서 유례가 없는 막강한 조직이 됐다.

권오승 공정위원장도 자신이 발간한 경제법 교과서에 독일이 연방카르텔청을 경제부 장관 소속으로 둔 것에 대해 "심결의 독립성을 유지하고 전문성을 확보하는 데 이러한 조직상의 구조가 장애가 되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고 기술,지나치게 높아진 공정위의 위상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었다.

차기현 기자 khch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