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민영 < LG경제연구원 금융재무그룹장 >

거리에 외제차가 넘쳐난다.

3~4년 전만 해도 유럽 차가 대세로 보이더니 최근에는 유독 일제 차가 눈에 많이 띈다.

일본으로부터의 수입 증가,좀 더 거창하게 말하면 대일(對日) 무역역조 심화의 현장이다.

올 상반기 150억달러에 육박한 대일 무역적자는 연간으로는 300억달러에 달해 사상 최고치를 경신할 전망이다.

구조적인 대일무역적자 문제는 1960년대 경제개발연대부터 이어진 해묵은 과제다.

수년 전 재정경제부 장관을 지내고 퇴임한 분이 1970년대 전반 초임사무관 시절에도 대일무역역조 시정 방안에 관한 보고서를 작성했다는데 이 보고서 제목은 앞으로도 당분간 필요할 듯싶다.

흔히 대일무역적자 확대는 엔화에 대한 원화의 상대적인 강세,즉 원·엔 환율 하락이 주된 원인인 것으로 이해되지만 이는 사실과 상당히 다르다.

물론 환율이 대일무역적자 확대 고착에 일조한 것은 사실이다.

원천기술이 부족한 상황에서 생산설비와 부품소재를 개발하기보다는 일본에서 수입하는 것이 손쉬운 길이었고 이 과정에서 유리한 환율여건이 대일수입을 촉진했다.

그러나 외환위기 이후 2~3년간의 시기를 제외하면 대일무역적자는 환율 수준과 상관없이 지속적으로 늘어나는 추세를 보여왔다.

1990년대 중반 엔화가 초강세를 띠어 원·엔 환율이 크게 올라간 시기에도 우리나라의 대일무역적자는 빠른 속도로 늘어났으며,달러에 대해 원화가 강세를 지속하는 가운데 2005년부터 엔화약세가 두드러졌지만 지난해까지 대일무역적자가 크게 악화되지는 않았다.

대일무역적자의 보다 근본적인 원인은 양국간의 분업(分業) 구조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우리 경제가 생산을 늘리기 위해서는 우리와 유사한 산업구조를 가지고 있는 동시에 생산 설비와 부품소재에 비교우위를 가지고 있는 일본으로부터 수입을 늘릴 수밖에 없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이는 지난 40여 년간 우리나라 경제성장의 기본 도식이었다.

수출의 수입유발계수가 0.36으로 매우 높은 수치를 기록하는 가운데 우리 나라 수출과 대일 수입 간의 상관계수가 0.94로서 여타국 수입과의 상관계수보다 월등히 높은 것은 이러한 양상을 잘 보여준다.

만일 대일무역역조가 소비재 수입 증가로 인해 초래된 것이라면 유행의 변화 등에 따라 양상이 달라질 수도 있다.

디자인이나 마케팅 분야에 대한 집중투자를 통해 상대적으로 단기간 내에 상황의 개선을 도모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현재의 대일무역역조는 소비재가 아닌 기계 등 생산재와 부품소재 등 중간재 위주로 수입이 늘어난 데 따른 것이다.

따라서 대일 의존적인 산업구조를 탈피하는 데 종합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며 그 핵심과제는 부품산업 육성이 될 것이다.

물론 일본으로부터의 단기차관 도입을 규제하는 등의 환율대책도 병행돼야 할 것이다.

그러나 현재 정상궤도를 벗어난 원·엔 환율은 시간의 경과에 따라 균형상태로 돌아올 것이고 환율정책의 실효성이 높지 않다는 점에서 좀 더 힘을 기울일 부분은 역시 산업구조 개선을 위한 노력이 될 것이다.

대일무역역조 완화를 위한 정책적 지원과 더불어 개별기업 차원의 전략적 접근도 강조돼야 할 것이다.

일본으로부터 싸게 부품소재를 수입만 할 것이 아니라 강한 원화를 활용해 부품소재를 생산하는 기업에 대해 공격적인 인수합병(M&A)을 고려할 수 있다.

최근 전 세계적인 유동성 위축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어 상황을 잘 활용하면 알짜배기 회사를 유리한 조건으로 인수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길 수 있다.

아울러 고급 기술인력이나 기술을 적극적으로 도입하는 것도 생각할 수 있다.

최근 수년간 세계경제 호조로 수출이 잘 되니 대일무역적자 이슈가 묻혀버리는 경향도 있다.

그러나 세계경제 둔화 등 상황이 달라지면 우리나라가 다시금 지속적인 경상수지 적자국으로 전락할지도 모른다.

경우에 따라서는,다시는 생각하기도 싫은 외환위기에 봉착할 수도 있다.

구조적인 대일무역 역조 해결을 위한 노력이 요구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