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리 데이비슨과 혼다는 세계 오토바이 업계를 대표하고 있는 기업들이다.

두 회사는 1970년대 중반부터 1990년대까지 시장을 놓고 치열한 경합을 벌였다.

처음에는 '기술 혼다'의 단단함과 돌파력을 앞세운 혼다의 승리.하지만 도산 직전까지 갔던 할리 데이비슨은 '오토바이 대신 역사와 라이프 스타일을 판다'는 감성 마케팅으로 일거에 전세를 역전시켰다.

1903년에 설립된 할리 데이비슨은 197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미국시장에서 연간 6만대를 팔던 절대 강자였다.

하지만 1980년부터 혼다 등이 중형 오토바이 시장을 잠식하면서 상황은 달라지기 시작했다.

혼다는 실용적인 디자인과 경제적인 엔진 설계로 인기를 모았다.

그런데도 할리 데이비슨은 불량률이 50%에나 달했던 생산 시스템을 바꾸려하지 않았다.

결국 할리 데이비슨을 광적으로 좋아하던 고객들도 일본기업 매장으로 발길을 돌리기에 이르렀다.

할리 데이비슨의 미국 내 시장 점유율은 5%까지 떨어졌고,급기야 파산 위기에 내몰렸다.

1981년 새로운 경영자로 들어선 보근 빌스만은 회사를 살리기 위해 혼신의 힘을 쏟았다.

하지만 불경기로 시장 상황이 좋지 않았던 데다 단기간에 생산성을 끌어올리기도 어려웠다.

할리 데이비슨은 오토바이를 전통적인 관점의 단순한 오토바이로 간주해서는 혼다와의 경쟁에서 승산이 없음을 깨달았다.

실제 혼다의 기술은 점점 더 좋아지고 있었다.

할리 데이비슨은 마케팅 전략을 통째로 바꾸는 개혁을 단행했다.

'슈퍼라이드 프로그램'을 개발,전국적인 판촉 활동을 벌였다.

여기에 초대받은 4만여명의 고객들은 '할리 데이비슨'이라는 글자가 적힌 티셔츠와 가죽 옷을 입었으며 일부는 이 회사의 이름과 로고를 문신으로 새기기도 했다.

'할리 데이비슨을 타는 사람들은 뭔가 다르다'는 이미지를 구축하는 데 성공한 것.1983년 2만7000대였던 할리 데이비슨의 판매대수는 1987년에 4만3300대로 증가했다.

1998년엔 중형 오토바이 시장의 59%를 점유하며 15%를 차지한 혼다를 가볍게 따돌렸다.

세계적인 품질을 앞세웠던 강력한 '기술 기업'도 문신까지 마다하지 않는 열혈 고객을 끌어들인 '소프트(soft) 기업'을 당하지 못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