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 휘트먼은 1998년 이베이의 최고경영자(CEO)로 부임하자마자 마케팅부문 단합대회를 열었다. 마케팅팀과 함께 고객 자료를 세밀하게 검토하다 의미 있는 숫자를 찾아냈다. 20%의 고객이 매출의 80%를 올려주고 있었다. 핵심 고객을 별도로 관리하고 특별 대우를 해 주는 '파워셀러스(PowerSellers)' 프로그램은 이렇게 탄생했다. CEO가 하는 일은 바로 이런 것이다. 성과를 좌우하는 핵심 부문에 자원을 집중시킬 수 있어야 한다.

휘트먼 사장의 사례는 '80 대 20 법칙'이 현실에서 얼마나 유용한가를 보여주고 있다. 이 법칙은 발견자의 이름을 따 파레토의 법칙이라고도 부른다. 이탈리아의 경제학자인 파레토는 국민 소득의 분포를 연구하는 과정에서 상위 20%의 인구가 전체 소득의 80%를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이 법칙을 가장 잘 활용해 온 부문이 바로 기업이다. 품질 경영을 예로 들면 전체 불량의 80%가 20%의 부품이나 공정에서 발생한다는 사실을 찾아낼 수 있다. 그래서 부품과 공정 모두를 신경 쓰는 게 아니라 '결정적인' 공정에만 집중해 품질을 눈에 띄게 개선할 수 있게 됐다. 경영혁신 방법론의 대표 격인 '6시그마'도 이 사고 방식을 바닥에 깔고 있다.

금융권에서 VIP 마케팅을 강화하는 것도 바로 이 핵심 20% 고객 집단에 집중하기 위한 노력이다. 이 법칙은 동물의 세계에도 적용될 정도로 보편적이다. 개미를 관찰해 보면 20% 정도만이 열심히 일하고,그 20%도 더 자세히 보면 그 가운데 80%는 일하는 시늉만 내고 있다고 한다.

자연의 순리와도 같은 이 법칙을 완전히 거스르는 분야가 있다. 바로 선거판이다. 여기에선 역(逆) 80 대 20 법칙이 더 잘 맞는 듯하다. 상위 20%를 모두 잡아도 패배하게 되니 말이다. 요즘 대선 정국을 보라. 선진 강국의 비전을 내놓지 않아도, 새 세계 질서에 대한 논의가 없어도, 경제와 문화에 대한 미래 예측에 무관심해도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위 80%를 차지하기 위한 싸움에서 고급이란 어울리지 않는 모양이다. '누가 덜 못났느냐'의 싸움에서 이기면 족한 형국이다.

물론 이제 시대가 바뀌어 파레토 법칙의 유용성이 많이 떨어졌다는 주장도 있다. 마케팅 이론에서 최근 나온 '롱테일(Long Tail) 법칙'이 그렇다. 핵심 고객이 아니라 '사소한 다수(trivial majority)'가 상위 20%의 합보다 훨씬 더 많은 수익을 가져다 준다는 것이 골자다. 인터넷과 디지털 기술의 발달로 유통 경로가 다양해지고 소비자들이 가질 수 있는 정보가 크게 늘면서 이 법칙이 가능해졌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이 경우도 80%를 소홀히 대할 수 없다는 메시지가 더 강하지 핵심인 20%를 도외시해도 된다는 주장은 아니다.

분명한 것은 나라 경영에서도 선택과 집중이 중요하고 그 사고 방식의 근간은 여전히 80 대 20의 법칙이라는 점이다. 투자를 적게 하면서도 성과를 크게 낼 수 있는 부문을 찾아내고 거기에 집중해야 예산을 줄이면서도 나라 경제를 살릴 수 있는 가닥이 잡히는 것이다. 80%의 개인들이란 응집력 없는 부동표로 언제든지 바뀔 수 있다는 현실론도 잊지 말아야 한다. 국가 CEO를 꿈꾸고 있는 정치 리더들이 핵심에 집중하는 경영의 힘과 사람들의 마음을 잡는 비전의 가치를 빨리 깨닫기를 바랄 뿐이다.

권영설 한경 가치혁신연구소장 yskw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