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차이나 리포트] (3) 비교우위 극대화 ‥ 설계는 한국서 용접은 중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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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동부해안 도시 칭다오 근교의 리창취(李滄區).한국 제조업체가 많이 진출한 곳이다.
취재길에 허름한 한 공장을 지났다.
정문은 굳게 닫혀 있었고,마당에는 잡초가 무성했다.
현지 기업인에게 '무슨 공장이냐'고 물으니 대뜸 "야반도주라는 말을 아느냐"는 질문이 되돌아온다.
그는 "제법 잘나가는 한국 의류공장이었는데 사장이 적자를 견디지 못해 공장을 버리고 한국으로 줄행랑쳤다"고 설명했다.
중국 현지 인력의 임금 급등으로 사업을 포기한 것이다.
리창취의 허물어진 공장은 중국 진출 임가공 업체의 한계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중국의 저임 노동력에 의존해 사업을 하던 많은 임가공 업체가 지금 보따리를 쌀 것이냐,아니면 좀 더 버틸 것이냐를 놓고 고민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임금 인상은 중국에 진출한 모든 한국 기업을 궁지로 몰아넣을 만큼 위협적인 것일까? 이 문제는 향후 한국 기업의 중국 비즈니스 방향을 결정지을 만큼 중요한 요소다.
임금 인상 문제가 지나치게 과장됐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칭다오에서 3시간여 자동차를 달려 도착한 옌타이의 대우조선해양 블록공장.한 달 전 본격 가동에 들어간 이 회사 공장 마당에는 철재가 가지런히 놓여 있다.
점심시간이 끝나는 신호가 울리자 수백명의 직원들이 일사불란하게 자리를 잡는다.
공장 여기저기에서 다시 용접 불꽃이 튄다.
대우조선해양이 옌타이에 진출한 첫 번째 이유는 저임 노동력이다.
최성락 옌타이법인 법인장은 "선박 제조 비용 전체에서 인건비가 차지하는 비중은 한국이 23%인 데 비해 중국은 8% 수준에 불과하다"며 "중국 블록공장 생산비는 한국의 약 7분의 1 수준"이라고 말했다.
설계는 한국에서,생산은 중국에서 담당하는 체제로 시너지를 노리고 있는 것이다.
중국 블록공장에서 만들면 t당 대략 200달러가 덜 들고,초대형 유조선(VLCC) 한 척을 건조할 때 적어도 800만달러를 절약할 수 있다는 게 최 법인장의 설명이다.
더욱 더 눈여겨 봐야 할 것은 중국 직원들의 노동력 질이다.
한국 직원에 못지 않다는 게 최 법인장의 평가다.
그는 "중국 직원들은 창의력은 떨어지지만 최소한 시키는 일은 완벽하게 처리한다"며 "가동 한 달여가 지난 지금 옌타이 공장의 생산성은 옥포조선소의 30%에 불과하지만 2∼3년 안에 옥포를 따라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 쪽에서는 임금 인상을 못이겨 줄행랑치고,또 한 편에서는 임금이 오히려 싸다며 중국 사업을 확대하겠다고 나서는 근본적인 차이는 무엇일까.
KOTRA 베이징무역관 이종일 관장은 "중국의 비교우위를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달렸다"며 "임금은 절대적 의존 대상이 아닌 기업 경영의 한 자원으로 흡수해야 할 대상"이라는 답을 내놓았다.
중국의 싼 노동력에 '의존'한 비즈니스 시대는 갔다는 얘기다.
대신 중국이 갖고 있는 저임 노동력이라는 비교우위를 어떻게 기업 경영에 끌어들이느냐에 비즈니스의 성패가 달렸다는 지적이다. 중국 공업도시 노동자의 평균 임금은 한국의 15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전문가들은 중국의 비교우위를 활용하기 위해서는 우선 한국 기업 스스로 절대적인 비교우위를 갖춰야 한다고 지적한다.
핵심은 기술이다.
대우조선해양이 옌타이 블록공장 설립으로 선박 건조의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근본 이유는 선박 엔진기술 및 디자인 능력,생산관리 노하우 등에서 절대적인 우위를 갖췄기 때문이다.
중국의 인건비 이점을 받아들여 다른 분야에서의 강점을 더욱 키울 수 있었다는 얘기다.
중국에서 성공한 대부분의 기업은 중국의 비교우위를 적절히 활용했다는 공통적인 특징이 있다.
한국 기업으로는 중국에서 처음 의류 유통사업 허가를 받은 상하이의 푸커리(服可利)는 지금 중국인 디자이너를 선발 중이다.
상품 기획을 현지화한다는 차원도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중국의 우수 디자이너를 확보,이들을 본사 차원에서 활용하겠다는 것이다.
푸커리의 경영 전략에 중국 인재 소싱 항목이 들어 있는 셈이다.
칭다오에 진출한 누가메디컬은 중국이 갖고 있는 원·부자재의 비교우위를 적절히 활용하고 있다.
이 회사의 주력 제품인 온열치료기는 핵심 부품을 제외한 나머지 80%의 부품을 중국에서 조달하고 있다.
주변 공장보다 임금을 약 20% 더 주고 있지만 매년 순이익이 30∼40%씩 증가하고 있다.
온열치료기 제작에 필요한 본사의 핵심 기술력과 중국의 저렴한 자재를 결합한 시너지 효과다.
낭패를 본 사례도 없지 않다.
작년 중국 정부가 국내 중견 조선업체인 H사에 LNG선을 중국에서 만들어줄 것을 제안했다.
그러나 이 회사는 핵심 기술 유출을 우려해 거절했다.
결국 중국 측은 LNG선 도입 기술을 프랑스 알스톰의 합작사에 의뢰했다.
알스톰은 중국에 기술을 파는 것도 모자라 1억달러를 추가 투자했다.
알스톰은 이를 통해 유럽에서는 2억3000만달러를 들여 만들던 LNG선을 1억4000만달러 선에서 건조할 수 있게 됐다.
한국 업계는 품에 안고 있던 기술이 프랑스 업체를 통해 중국으로 넘어가는 것을 바라봐야만 했다.
꿩도 알도 놓친 셈이다.
지만수 베이징대외경제연구소장은 "반도체 LCD 조선 등의 분야도 기술력을 움켜쥐고 있기보다는 어떻게 하면 중국의 이점과 결합할 것인지 고민해야 할 것"이라며 "중국이 갖고 있는 각종 비교우위는 곧 한국 기업의 경영 자원이라는 적극적인 인식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옌타이.칭다오.상하이=한우덕 기자/조주현 베이징 특파원 woodyhan@hankyung.com
취재길에 허름한 한 공장을 지났다.
정문은 굳게 닫혀 있었고,마당에는 잡초가 무성했다.
현지 기업인에게 '무슨 공장이냐'고 물으니 대뜸 "야반도주라는 말을 아느냐"는 질문이 되돌아온다.
그는 "제법 잘나가는 한국 의류공장이었는데 사장이 적자를 견디지 못해 공장을 버리고 한국으로 줄행랑쳤다"고 설명했다.
중국 현지 인력의 임금 급등으로 사업을 포기한 것이다.
리창취의 허물어진 공장은 중국 진출 임가공 업체의 한계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중국의 저임 노동력에 의존해 사업을 하던 많은 임가공 업체가 지금 보따리를 쌀 것이냐,아니면 좀 더 버틸 것이냐를 놓고 고민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임금 인상은 중국에 진출한 모든 한국 기업을 궁지로 몰아넣을 만큼 위협적인 것일까? 이 문제는 향후 한국 기업의 중국 비즈니스 방향을 결정지을 만큼 중요한 요소다.
임금 인상 문제가 지나치게 과장됐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칭다오에서 3시간여 자동차를 달려 도착한 옌타이의 대우조선해양 블록공장.한 달 전 본격 가동에 들어간 이 회사 공장 마당에는 철재가 가지런히 놓여 있다.
점심시간이 끝나는 신호가 울리자 수백명의 직원들이 일사불란하게 자리를 잡는다.
공장 여기저기에서 다시 용접 불꽃이 튄다.
대우조선해양이 옌타이에 진출한 첫 번째 이유는 저임 노동력이다.
최성락 옌타이법인 법인장은 "선박 제조 비용 전체에서 인건비가 차지하는 비중은 한국이 23%인 데 비해 중국은 8% 수준에 불과하다"며 "중국 블록공장 생산비는 한국의 약 7분의 1 수준"이라고 말했다.
설계는 한국에서,생산은 중국에서 담당하는 체제로 시너지를 노리고 있는 것이다.
중국 블록공장에서 만들면 t당 대략 200달러가 덜 들고,초대형 유조선(VLCC) 한 척을 건조할 때 적어도 800만달러를 절약할 수 있다는 게 최 법인장의 설명이다.
더욱 더 눈여겨 봐야 할 것은 중국 직원들의 노동력 질이다.
한국 직원에 못지 않다는 게 최 법인장의 평가다.
그는 "중국 직원들은 창의력은 떨어지지만 최소한 시키는 일은 완벽하게 처리한다"며 "가동 한 달여가 지난 지금 옌타이 공장의 생산성은 옥포조선소의 30%에 불과하지만 2∼3년 안에 옥포를 따라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 쪽에서는 임금 인상을 못이겨 줄행랑치고,또 한 편에서는 임금이 오히려 싸다며 중국 사업을 확대하겠다고 나서는 근본적인 차이는 무엇일까.
KOTRA 베이징무역관 이종일 관장은 "중국의 비교우위를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달렸다"며 "임금은 절대적 의존 대상이 아닌 기업 경영의 한 자원으로 흡수해야 할 대상"이라는 답을 내놓았다.
중국의 싼 노동력에 '의존'한 비즈니스 시대는 갔다는 얘기다.
대신 중국이 갖고 있는 저임 노동력이라는 비교우위를 어떻게 기업 경영에 끌어들이느냐에 비즈니스의 성패가 달렸다는 지적이다. 중국 공업도시 노동자의 평균 임금은 한국의 15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전문가들은 중국의 비교우위를 활용하기 위해서는 우선 한국 기업 스스로 절대적인 비교우위를 갖춰야 한다고 지적한다.
핵심은 기술이다.
대우조선해양이 옌타이 블록공장 설립으로 선박 건조의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근본 이유는 선박 엔진기술 및 디자인 능력,생산관리 노하우 등에서 절대적인 우위를 갖췄기 때문이다.
중국의 인건비 이점을 받아들여 다른 분야에서의 강점을 더욱 키울 수 있었다는 얘기다.
중국에서 성공한 대부분의 기업은 중국의 비교우위를 적절히 활용했다는 공통적인 특징이 있다.
한국 기업으로는 중국에서 처음 의류 유통사업 허가를 받은 상하이의 푸커리(服可利)는 지금 중국인 디자이너를 선발 중이다.
상품 기획을 현지화한다는 차원도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중국의 우수 디자이너를 확보,이들을 본사 차원에서 활용하겠다는 것이다.
푸커리의 경영 전략에 중국 인재 소싱 항목이 들어 있는 셈이다.
칭다오에 진출한 누가메디컬은 중국이 갖고 있는 원·부자재의 비교우위를 적절히 활용하고 있다.
이 회사의 주력 제품인 온열치료기는 핵심 부품을 제외한 나머지 80%의 부품을 중국에서 조달하고 있다.
주변 공장보다 임금을 약 20% 더 주고 있지만 매년 순이익이 30∼40%씩 증가하고 있다.
온열치료기 제작에 필요한 본사의 핵심 기술력과 중국의 저렴한 자재를 결합한 시너지 효과다.
낭패를 본 사례도 없지 않다.
작년 중국 정부가 국내 중견 조선업체인 H사에 LNG선을 중국에서 만들어줄 것을 제안했다.
그러나 이 회사는 핵심 기술 유출을 우려해 거절했다.
결국 중국 측은 LNG선 도입 기술을 프랑스 알스톰의 합작사에 의뢰했다.
알스톰은 중국에 기술을 파는 것도 모자라 1억달러를 추가 투자했다.
알스톰은 이를 통해 유럽에서는 2억3000만달러를 들여 만들던 LNG선을 1억4000만달러 선에서 건조할 수 있게 됐다.
한국 업계는 품에 안고 있던 기술이 프랑스 업체를 통해 중국으로 넘어가는 것을 바라봐야만 했다.
꿩도 알도 놓친 셈이다.
지만수 베이징대외경제연구소장은 "반도체 LCD 조선 등의 분야도 기술력을 움켜쥐고 있기보다는 어떻게 하면 중국의 이점과 결합할 것인지 고민해야 할 것"이라며 "중국이 갖고 있는 각종 비교우위는 곧 한국 기업의 경영 자원이라는 적극적인 인식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옌타이.칭다오.상하이=한우덕 기자/조주현 베이징 특파원 woody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