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핵시설 폐쇄이행은 "비핵화 공약을 행동으로 옮기는 첫 걸음"이라는 게 6자회담국의 대체적인 평가다.

2·13 합의 후 방코델타아시아(BDA) 북한자금 이체문제로 인해 당초 약속한 시한보다 3개월 정도 지연됐지만 북한이 핵폐기를 위한 1단계 조치 이행에 본격 돌입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북핵 폐기의 분수령은 향후 2단계 조치가 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배적인 관측이다.

2단계는 북한이 기존 핵 물질과 핵무기는 물론 핵개발 활동을 완전히 공개해야 하고,핵시설을 되돌릴 수 없는 상태로 불능화해야 하기 때문에 1단계보다 더 큰 진통을 겪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당장 북한은 15일 미국의 테러지원국명단 지정 해제와 적성국교역법 적용 종료 등의 상응 조치를 요구하고 나섰다.


◆폐쇄·봉인 완료 2주 걸릴듯

북한이 2·13 합의에 따라 폐쇄할 핵시설 대상은 영변에 있는 △5MW 원자로(흑연감속로) △방사화학실험실(핵연료 재처리시설) △핵연료봉 제조공장 △50MW 원자로(건설중단 상태)와 태천에 있는 200MW 원자로(건설중단 상태)다.

영변시설은 1994년 미·북 제네바 기본합의 때 동결됐으나 2002년 북핵 2차 위기가 발생하면서 재가동됐다.

북한은 이번에 가동중단한 구체적인 시설을 아직 공식적으로 밝히진 않았으나 지난 14일 방북한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단이 폐쇄를 검증하는 데는 2~3주 정도가 걸릴 전망이다.

IAEA 사찰단은 이어 폐쇄된 핵시설에 감시카메라를 설치하고 현지에 일부 전문가를 상주시켜 모니터링을 지속한다는 계획이다.

◆"불능화는 황소 거세하는 것"

크리스토퍼 힐 미 국무부 차관보는 14일 북한의 영변 핵시설 가동 중단 통보소식이 전해지기 전 일본에서 "앞으로 더 이상의 문제는 없을 것이라고 말하면 좋겠지만 내 경험상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18일부터 열리는 6자회담 등 2단계 조치를 논하는 협상과정들이 만만치 않을 것임을 내비친 것이다.

특히 북한이 핵무기 원료인 고농축우라늄(HEU)의 존재와 개발활동을 신고할지 불투명하다.

2002년 10월 방북했던 제임스 켈리 당시 미 국무부 차관보는 HEU를 중심으로 한 북한의 핵프로그램이 드러났다고 밝혀 북핵 2차 위기가 발생했다.

그만큼 미국은 HEU에 극도로 민감하다.

반면 북측은 지금까지 HEU 존재를 인정하지 않았다.

HEU를 비롯한 북한의 모든 핵프로그램이 신고될 경우에는 불능화 단계로 넘어가게 된다.

불능화는 핵심부품을 해체해 핵시설을 다시 가동할 수 없도록 만드는 것으로 영구폐기 직전의 단계다.

6자회담 북측 수석대표인 김계관 외무성 부상은 "불능화는 황소를 거세하는 것"이라고 표현한 적이 있다.

◆내달 6자 외교장관 회담 관심

그러나 불능화 국면이 빠른 속도로 진전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송민순 외교부 장관은 15일 "(6자회담에 이어) 조만간 6자 외교장관회담이 열리면 핵시설 불능화와 불능화를 가능케 하는 상응 조치의 합의를 염두에 두고 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힐 차관보와 김 부상이 지난 1월 독일 베를린에서 회동해 BDA 문제뿐 아니라 불능화에 관한 모종의 합의를 했을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힐 차관보가 15일 방한하기 직전 일본에서 "불능화 조치가 연말까지 완료되기를 희망한다"고 불능화 시기를 언급한 것에 주목해야 한다는 얘기다.

한 외교소식통은 "핵시설 폐쇄를 넘어 모든 핵프로그램의 신고와 불능화 등의 2단계 조치는 핵심 당사국인 북한과 미국의 합의가 필수적"이라면서 "베를린에서 양측이 기본적인 의견을 교환한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베이징 6자회담에 이어 다음 달 중 예상되는 6자 외교장관회담에서 결과가 좋을 경우 북한의 비핵화,북·미 관계 정상화,한반도 평화체제 구축과정이 의외로 가속도를 낼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김홍열 기자 com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