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조세연구원이 13일 발표한 '기부문화 활성화 및 공익법인 투명성 제고 방안'은 기업주가 공익법인에 많이 출연하도록 유도하겠다는 명분을 담고 있다.

그러나 기업 경영권 상속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기업주들에게는 '공익법인을 통한 경영권 상속'이 가능해진다는 의미가 적지 않다.

공익법인의 주식보유 한도가 5%에서 20%로 늘어나고 총자산의 30% 범위 내에서 계열기업 주식을 취득할 수 있도록 했던 것이 50%로 늘어남에 따라 공익법인의 역할은 앞으로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상속ㆍ증여세를 피하기 위해 지분을 공익법인에 출연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자녀를 공익법인의 이사 등으로 올리면 계열사를 간접 지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기업 승계에 '묘책' 생긴다

현행법에 따르면 공익법인에 기업 지분을 넘길 경우 10~50%에 이르는 증여세를 면제받는다.

따라서 기업주가 2세에게 회사 지분을 직접 넘기는 대신 공익법인을 만들어 출연한 뒤 자녀를 공익법인 이사 등에 올려 회사를 간접 지배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또한 공익 목적으로 사용하는 이익금을 비용으로 처리할 수 있어 법인세 부담이 낮아지고 원천징수되는 세금을 제외한 이자소득에 대해서도 세금을 내지 않는 등 다양한 세 혜택을 받을 수 있다.

공익법인은 문화·예술 학교 종교 자선단체 등 분야가 다양하고 신고만으로 만들 수 있어 설립이 어렵지 않다.

◆정부 "투명성 전제로 허용"

이처럼 정부가 공익 법인의 주식 보유 한도를 대폭 늘림에 따라 2세 승계 문제로 고민하고 있는 대기업들의 공익법인 설립 또는 기존 공익법인 지분 출연이 줄을 이을 전망이다.

정부도 "선의의 기업가가 과다한 상속세 부담을 회피하기보다는 주식을 공익사업에 출연해 자신과 가문의 명예를 높이거나 자선행위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은 바람직하다"고 말하고 있다.

실제로 미국 등 선진국에서도 이 같은 공익법인이 사실상 대기업 집단의 지주회사 역할을 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하지만 정부는 공익법인의 '투명성 제고'라는 전제조건이 달성돼야 주어지는 '당근'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조세연구원은 우선 공익법인이 자체 공익목적으로 사용하는 은행 계좌를 정해놓고 이를 세무서에 신고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정부가 공익법인의 금전 입출금 통장계좌를 속속들이 들여다보겠다는 것이다.

자산 10억원 이상인 공익법인부터 단계적으로 적용,모든 공익법인으로 대상이 확대된다.

공익법인의 외부 감사를 의무화하는 방안도 추진된다.

자산총액이 100억원 이상인 공익법인부터 시행,단계적으로 대상법인을 확대할 예정이다.

이 밖에 공익법인이 받는 기부금과 사용 내역, 자산 변동 내역 등을 매년 일정 양식에 따라 의무적으로 공시하는 방안도 나왔다.

하지만 이 같은 투명성 강화 방안이 시행돼도 공익법인을 사실상 지주회사처럼 운영하는 것이 기업주 입장에선 더 유리할 것이란 지적이다.

투명성 강화방안이 엄격한 기업회계 기준과 거래소 공시 기준 등에는 턱없이 못 미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재정경제부 관계자는 "공익법인은 사업 목적이 한정돼 있고 투명성이 강화되기 때문에 대기업주의 전횡을 위한 도구로 사용되는 부작용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차기현 기자 khch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