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우 < 소설가 >

인터넷이 세상에 보급된 지도 어느덧 10년이 넘었다. 인류의 역사에 비해 인터넷의 역사가 일천하기 짝이 없음에도 이제 그것이 없는 세상은 상상하기 힘들 정도다.

세상이 오프라인과 온라인으로 양분된 게 아니고,온라인 없는 오프라인이나 오프라인 없는 온라인을 상상하기 힘들게 된 것이다. 상호 보완적인 방향으로 제대로만 흘러간다면 우리는 상상을 초월하는 새로운 인류 문명을 창출하는 최초의 세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인터넷으로부터 파생하는 많은 문제점을 해결하지 않고는 자칫 인터넷이 없던 시절보다 훨씬 열악하고 끔찍한 세상이 열릴 수도 있다는 걸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인터넷과 함께 21세기의 주요한 키워드로 떠오른 것이 '노마드(유목민)'란 단어다.

프랑스의 대표적 지성 자크 아탈리는 그의 저서 '호모 노마드(L'homme nomade)'에서 태초의 인류를 유목민으로 규정하고 6000년의 정착민 역사가 아니라 600만년의 장구한 유목민 역사에서 21세기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찾고자 했다.

불,언어,민주주의,시장 등 끊임없는 질주와 생성을 통해 얻어낸 유목민의 발명품에 비해 정착민은 고작 국가,세금,감옥,무기 따위를 개발했을 뿐이라는 것이다.

세계 인구의 10억명 이상이 이민 출장 여행 등으로 항상 이동하고 있는 21세기는 결국 새로운 노마드의 시대가 될 것이라는 견해다.

국경은 허물어지고 국가는 노마드 행렬을 잠시 멈추게 하는 오아시스의 역할을 감당할 수밖에 없게 될 것이라는 결론.

이 지점에서 나는 오프라인과 온라인 세상의 상호 대비점을 발견하게 된다.

인류는 국가 간의 경계를 허물고 강압과 구속,통제로부터 탈주하기 위해 유목적인 삶으로 이주하고 있는데 인터넷 세상에서는 이제 막 정착민들이 유목민들을 몰아내기 위해 제도적 통제장치를 양산해내고 있기 때문이다.

인터넷에서 양산되는 부정적인 측면,예를 들어 익명성을 바탕으로 한 온갖 범죄적 요소들이 연일 뉴스거리가 된다.

예컨대 해킹,유해 정보,악성댓글,사생활 침해,불법 다운로드,성매매 등등의 부정적 측면은 정착민의 관점에서 바라본 유목민의 '야만'과 '불순'의 이미지 그 자체이다.

그리하여 인터넷의 벌판에서 익명성으로 말달리던 거친 유목민들은 추방당하거나 감금당한다.

정착과 유목의 대립으로 피 흘리던 인류의 역사가 지금 인터넷 세상에서 다시 재연될 조짐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참으로 황당하고 어리석은 쟁투가 아닌가.

지금은 정착이냐 유목이냐를 놓고 전쟁을 치러야 할 때가 아니다.

그것은 이미 지나간 인류의 역사를 통해 경험과 지식이 넉넉하게 축적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에게 남겨진 것은 새로운 인류의 유형을 제안하고 그것을 양성화하는 것이다.

자크 아탈리가 제시한 것처럼 정착민의 덕목과 유목민의 덕목을 두루 갖춘 신인류의 유형을 정립해야 하는 것이다.

마음만 먹으면 앉은 자리에서 인터넷만으로 얼마든지 세계 일주를 할 수 있는 세상인데 무조건 하지 말라,나쁘다,처벌받게 될 것이다 따위의 부정적 언사로 새로운 세대의 개성과 기질을 억압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인터넷이 없던 시절,학교에서는 도덕과 윤리를 가르쳤다.

마찬가지로 인터넷이 또 하나의 세상이 되어버린 지금 학교와 가정에서는 아이들에게 새로운 인터넷 환경에 대한 가치관을 일깨워야 한다.

세상이 PC의 정글이고 바다인데,그것에 제대로 적응하게 만드는 교과목이 없다는 건 참으로 심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지금 우리에게 21세기의 디지털 세상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철학적 바탕이 준비돼 있는가.

현재의 인터넷 세상에는 원시인과 유목민과 정착민이 공존하고 있다. 아직 공존의 방식을 찾아내지 못하고 있으니 말이 많고 탈이 많은 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혼돈의 시간을 슬기롭게 극복하면 공존의 시간이 올 것이다. 그리고 공존의 시간이 오면 투명한 인터넷 문화를 통해 많은 걸 공유하게 될 것이다. 제도적 구속과 속박에서 벗어난 참다운 개성의 소유자,독립적 주체성을 지니고 미래를 향해 거침없이 말 달리는 신인류를 꿈꾸어 본다. 공존과 공유,그것이 문제의 핵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