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洸綠 < 부경대 교수·법학 >

우여곡절 끝에 우리나라도 소위 미국식 로스쿨을 도입하게 됐다.

최초에 미국식 로스쿨의 도입이 논의되기 시작한 것이 김영삼 정부 때부터이니 13년이 걸려서야 도입이 결정된 것이다.

사실 미국식 로스쿨의 도입 이유는 지금까지의 사법시험제도가 우리나라 사법제도 전반에 걸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지적에 따른 것이다.

현행 사법시험제도는 고급인력에 대한 고시 낭인(浪人)의 양산,전문지식을 갖춘 법조인 양성의 어려움,법조인의 국제경쟁력 약화,대학에서의 법학교육 황폐화 등을 초래하는 원인이라는 비판이 있어 왔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 사회 구성원 전체가 현행 사법시험 제도로는 새롭게 요구되는 수요자 중심의 제대로 된 법률서비스를 기대할 수 없다는 데 인식을 같이한 결과다.

현재 전국의 250개 시·군·구 중에서 변호사가 한 명도 없는 120개 이상의 시·군·구가 소위 무변촌(無辯村)이다.

따라서 우리 국민들로 하여금 적은 비용으로 양질의 법률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미국식 로스쿨을 도입해 우리나라의 변호사 수를 획기적으로 늘릴 필요가 있다는 데에는 모두가 동의할 것이다.

그런데 최근 대한변호사협회는 '로스쿨 문제'를 논의한 후 현재 사법시험 합격자 수인 1000명 선을 고려해 로스쿨 입학 총 정원을 1200명 선에서 결정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로스쿨 입학 총 정원을 최종적으로 결정하게 될 교육부 또한 그 정원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은 채 설치대학의 수를 늘리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입장만을 밝히고 있는 실정이다.

이쯤 되면 우리가 도입하는 로스쿨은 '미국식' 로스쿨이 아니라,양질의 법률서비스를 필요로 하는 국민들의 요구를 저버리고 자신들의 잇속에만 관심을 두는 '무적(無籍)'의 로스쿨에 불과하다.

미국의 경우 1년에 두 번,여름과 겨울에 변호사 자격시험을 치른다.

더욱이 우리나라처럼 한 해 배출되는 변호사 수를 미리 정해 놓지 않고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도 많이 응시하는 뉴욕주의 경우 1000점 만점에 670점 정도면 합격인데,지난해 여름 1만448명이 변호사 자격시험에 응시해 7258명이 합격했고,겨울에는 3565명이 응시해 1635명이 합격했다.

우리나라 남북을 합친 크기의 약 0.8배 정도에 총 인구 수가 고작 1900만여명인 뉴욕 주에서만 한 해 배출되는 변호사 수가 우리나라 전체 변호사 수인 8000명보다 훨씬 많은 9000명 선에 이른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미국의 대형 로펌인 '베이커&매킨지'의 소속변호사는 국내 최대 로펌인 '김&장'의 11.6배인 3246명이며,매출액은 우리나라 전체 법률시장 규모인 1조3000억원보다 많은 1조5000억원 규모에 이른다.

로펌은 그 특성상 전문화는 물론 어느 정도 대형화를 이뤄야 경쟁력을 갖는다.

세계무역기구(WTO) 뉴라운드와 최근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따라 국내 법률서비스 시장은 점차 개방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 국내 법률시장이 개방되면 소위 외국계 로펌이 국내 법률서비스 시장을 잠식하게 될 것이라는 우려가 많다.

사실 법률시장에 비해 우리나라 변호사 수는 세계 기준에 비춰 턱없이 적기 때문이다.

2002년 기준으로 변호사 1인당 국민 수는 9564명으로 미국은 284명,영국은 593명이고,일본도 6752명으로 우리나라 변호사 수가 상대적으로 매우 적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이유에서 미국식 로스쿨을 도입하는 현 시점에서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바로 우리 스스로의 몸집을 불려 국제 경쟁력의 기초로 삼는 것이다.

물론 전문성을 함께 갖춰 나가야 하는 것도 당연하다.

새롭게 도입되는 로스쿨의 총 입학정원을 현재 배출되는 변호사 수인 1000명 선에 맞추는 것이 당장은 우리의 실정에 맞는 것처럼 보일지 모른다.

그러나 조금만 눈을 들어 보면 일각에서 주장하는 3000명 선도 부족하다.

당장의 대(對)국민 법률서비스의 질을 높이는 것은 물론 머지않은 장래의 국제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