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榮奉 < 중앙대 교수·경제학 >

지난 일요일 서울시는 103개 학교에서 1만여명의 직원을 동원해 공무원 채용시험을 치렀다.

1732명을 뽑는 데 무려 14만여명이 지원해 83 대 1의 경쟁률을 보인 시험이다.

서울시는 시험의 변별력을 높이기 위해 출제를 어렵게 했다고 한다.

이런 시험에서는 0.1점도 안 되는 차이로 당락(當落)이 갈릴 것이다.

낙방한 수험생들의 가슴은 찢어지겠지만 어쩌랴,14만여명이 공정히 겨룬 승부에서 떨어진 것이다.

부족했던 자신을 탓하며 겸허히 시험결과를 수용할 것이다.

서울시도 유능한 공무원을 뽑아 만족할 것이다.

문제는 공무원 시험이 어려워서 공시(公試)전문 학원이 늘어난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대학 등 공교육이 황폐화하고 공시 지원자들의 학원비 부담이 커지며 부자들만 합격해 공무원이 될 가능성이 크다고 정권은 걱정할 것이다.

따라서 지금부터는 시험을 아주 쉽게 내고 대신 출신학교 내신 성적을 50% 적용해서 시 공무원을 뽑으면 어떨까.

서울대 법대나 지방대 비인기 학과나 학력차이는 원래 없으므로 서울시는 학교등급을 가리면 안 된다.

기왕이면 판·검사,외교관,기타 국가공무원을 모두 비차별 내신으로 뽑고,삼성 현대 등 모든 상장기업의 채용도 이런 방식으로 해서 소득의 양극화,대학의 양극화,지역 불균형의 문제를 일거에 해소하자.물론 각 직장의 운동선수나 방송에 나오는 연예인들도 모두 이렇게 뽑아야 한다.

이런 제안을 하면 당국은 문제를 비약하거나 비아냥대지 말라고 할지 모른다.

그러나 청소년은 국가의 미래이니 우리 국가사회제도의 뿌리가 바로 청소년교육으로부터 만들어지는 것 아닌가.

학교에서 청소년들은 "학교 간 학력차이는 없는 것이다,그런 자료를 투명하게 공개하는 것은 나쁜 짓이다"라고 너무나 빤한 거짓을 감추라고 가르침받고 있다.

이런 교육은 위선자와 사기꾼을 사회에 배출시킬 것이다.

학교현장에서 성실하게 노력하거나 실력이 좋은 사람들이 역차별 당하는데 이 사회에 공정한 경쟁과 정당한 질서가 존재하겠는가.

경쟁 없이 국가가 국민의 운명을 결정지어 주는 사회를 진보좌파들은 정의가 승리하는 사회라고 믿는 것 같다.

그러나 열심히 노력하는 자가 정부에 기대는 자에게 패배하는 사회가 어떻게 정의로울 수 있는가.

이런 사회에서는 노력해본 경험이 없이 명분만 찾는 선동자가 지도자로 뽑히게 되며,국민은 정치에 광분해서 분열하고 중구난방(衆口難防)으로 제 몫을 달라고 외치게 되는 것이다.

우리나라에는 실로 무한한 교육수요가 존재한다.

현재 미국에 유학 중인 한국학생 수는 세계 제일이고 중국 내 해외유학생도 38%가 한국인이라고 한다.

이 밖에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필리핀에 이르기까지 한국의 학생은 세계 구석구석을 헤매며 보다 낳은 교육을 찾고 있다.

우리 국민이 학원비 과외비 해외유학 등에 지출하는 사교육비는 연 30조원이라고 하나,실상 학부모들이 기울이는 헌신적 노력을 감안한다면 한국의 교육자원이 얼마나 클지 상상하기도 어렵다.

이런 수요만큼 우리 교육은 세계 최고 수준이 될 잠재력을 가진다.

그러나 정부의 고루한 통제와 평등주의에 갇혀 한발짝도 앞으로 못 나가고 있다.

지난 수십년간 교육기관에 자율적 역할을 맡겼다면,우리 국민과 기업이 세계로 뻗어가듯 지금쯤 외고 과학고 민사고와 같은 세계적 명문고가 온 나라에 넘쳐 가난한 사람들에게도 문이 크게 열렸을지 모른다.

세계 첨단의 대학과 교육인프라를 보유한 아시아의 교육허브가 돼 우리 아이들을 후진국에 내모는 대신 온 세계 유학생이 찾아오는 나라가 됐을 수도 있다.

그러나 한국의 교육은 21세기 글로벌 환경에 적합한 인력을 배출하는 역할에 실패했고,나아가 오늘날 한국사회에 존재하는 온갖 무법,불합리,비정의와 비능률의 근원을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민주주의 정부에는 이런 국민의 자율적 에너지를 억누를 권리가 없다.

다음 대통령이 되고자 하는 사람들은 반드시 이점을 명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