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가 밀어 올린 꽃줄기 끝에서/ 그대가 피는 것인데/ 왜 내가 이다지도 떨리는지// 그대가 피어 그대 몸속으로/ 꽃벌 한 마리 날아든 것인데/ 왜 내가 이다지도 아득한지/ 왜 내 몸이 이리도 뜨거운지// 그대가 꽃 피는 것이/ 처음부터 내 일이었다는 듯이.'('내 몸속에 잠든 이 누구신가')

시인 김선우씨(37)가 세번째 시집 '내 몸속에 잠든 이 누구신가'(문학과지성사)를 내놨다.

시인은 이번 시집에서도 여성의 몸에 관한 존재론적 의미를 찾는 모습을 보여준다.

하지만 이전 작품과 달리 '내 몸' 자체에 대한 관심에서 더 나아가 타자를 포용하는 마음을 녹여내고 있다.

시집 제목 '내 몸속에 잠든 이 누구신가'도 이를 반영한 것이다.

그만큼 '사랑'에 관한 내용이 더 많아졌다.

'그대 만나러 가는 길에/ 풀여치 있어 풀여치와 놀았습니다/ 분홍빛 몽돌 어여뻐 몽돌과 놀았습니다/(중략)/ 내 고단함을 염려하는 그대 목소리 들었습니다/ 나,괜찮습니다/ 그대여,나 괜찮습니다.'('사랑의 빗물 환하여 나 괜찮습니다' 중)

그동안 '내면적 분석과 외부에 대한 집요한 응시'(김춘식 문학평론가)로 평가받던 그의 시세계가 '응시'에서 '어루만짐'으로 확장된 것이다.

하지만 그의 포용이 생(生)의 고통을 '극복'하려는 욕심에서 나온 것은 아니다.

다시 떨어질 줄 알면서도 끊임없이 산 위로 돌을 굴리는 시지프스처럼 고통마저 고스란히 삶의 일부로 받아들인다.

'불구경 간다 불구경 가/ 불속에 이지러지며 날아오르는 그림자 본다/ 누구라도 지옥 한두 개쯤 무릎 아래 가져보지 않았겠는가.'('화염 도시' 중)

박신영 기자 nyus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