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라리 강남에 번듯한 건물이나 사둘 걸 괜히 외식 사업한다고 했나 봐요."

이름만 들으면 알 만한 중견기업 오너의 2세인 K씨는 올해 4년째 외식 사업을 하면서 가끔 후회하곤 한다.

'괜찮은 건물 사서 임대료 받고 못다한 공부나 더 하라'는 아버지 말씀을 안 듣고 외식 사업에 뛰어든 것에 대한 후회다.

"월 매출 3500만원을 올리면서 월세를 2700만원까지 줘 봤습니다.

매장 재계약할 때마다 건물주에 갖다 바치는 돈하고 제가 지끔껏 번 돈을 비교하면 억울한 마음을 지울 수 없습니다."

비싼 외식 물가의 원인을 추적하면서 접한 한국의 임대료 수준은 가히 '살기(殺企)적'이라 할 만했다.

국내 외식 시장에서 아예 창의적인 기업가 정신이 사라지고 있는 것 아니냐는 우려까지 들었다.

이 같은 사례는 비단 K사장에게만 국한되지 않는다.

서울 도심 지역에서 음식점을 하고 있는 L씨는 "1년 내내 휴일과 휴가도 거의 없이 일해 봤자 내가 손에 쥐는 돈은 점포주에게 임대료로 내는 금액의 4분의 1에도 못 미친다"며 "보증금 2억원에다 지금까지 들어간 월세를 합쳐 은행에 맡겼으면 스트레스 안 받고 그만한 돈은 벌 수 있었을 것"이라고 하소연했다.

하도 답답해 "좀 임대료 싼 곳으로 가면 되지 않느냐"는 '무식한' 질문도 해 봤다.

외식업체 관계자들은 "명동 강남 신촌 등 핵심 상권에서 브랜드를 알려 놓지 않으면 거들떠 보지도 않는 게 한국 소비자들의 특성"이라며 "늪인 줄 알면서도 발을 디디는 게 현실"이라고 혀를 내둘렀다.

사정이 이렇자 기존 업체들은 하던 사업을 유지하는 데 급급할 뿐 또 다른 시장 개척은 엄두도 못 내고 있다.

실제 최근 외식업계엔 시푸드 레스토랑을 제외하면 이렇다 할 신규 브랜드가 없는 게 현실이다.

정진구 CJ푸드빌 고문은 "손쉽게 외국 브랜드를 들여오는 것도 임대료 무서워 못하는 실정이니 한국적인 음식을 개발해 브랜드화하는 것은 기대하기 어려운 일"이라고 말했다.

한국의 비정상적인 임대료 문제는 비단 장바구니 물가를 올려놓는 것뿐만 아니라 외식업계의 오랜 숙원인 '한국 음식의 세계화'에도 큰 장애물이 되고 있는 셈이다.

박동휘 생활경제부 기자 donghui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