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한 외국인 I♥KOREA] '부시 장학생' 여름 한글캠프 "한글 알아야 한국을 알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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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겠습니다. 알겠어요. 알았어."
"한국말은 존칭어가 중요합니다. 할아버지께서 물으셨는데 '알았어'라고 하면 무례하다고 나무라시겠죠.'알겠습니다'라고 답해야죠. 편한 친구끼리는 그냥 '알았어'라고 반말을 하면 되고요."
한국인 선생님의 '한글' 강의를 듣는 외국인 학생들의 표정이 사뭇 진지하다.
초롱초롱한 벽안의 외국인 25명이 큰 소리로 따라한다.
"알겠습니다."
지난 5일 경희대 수원 캠퍼스. 경희대와 펜실베이니아대가 공동 진행하는 외국인 대상 한글 캠프가 열리고 있었다.
두달 일정으로 짜여진 '한국어 집중 강좌 프로그램'이다.
한글캠프는 주5일 동안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빡빡하게 진행된다.
한국어를 배우느라 비지땀을 흘리는 이들 25명은 '부시 장학생'들이다.
미국 전역에서 한국어 프로그램 참가를 희망한 500여명의 학생 중 최종 선발됐다.
미국 정부는 아랍,중국,한국어 등 외국어 전문가를 육성하기 위해 2년 전부터 '국가 안보 언어계획(NSLI: National Security Language Initiative)'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도입한 제도여서 '부시 장학생'이라고 불린다.
미 워싱턴DC의 존스홉킨스 대학원에서 아시아 경제 석사과정을 밟고 있는 저스틴 슬로안씨(26)는 한국어를 배우기 위해 지난달 18일 경희대 수원캠퍼스를 찾았다.
그의 꿈은 워싱턴 백악관에서 아시아 정책 입안자로 일하는 것이다.
슬로안씨는 고등학교 시절 '아시아'와 첫 인연을 맺었다.
"고교 2년 동안 제2외국어로 스페인어를 배웠죠.그런데 영어와 너무 똑같아 지겨웠죠.그때 한국어를 만났어요. 한국어는 '퍼즐' 같아요. 영어와는 또다른 언어 체계의 매력에 푹 빠졌죠.A학점도 받았습니다."
얼마 전 결혼해 새댁 티가 나는 애니타 켈로그씨(28)도 한국과 깊은 인연을 갖고 있다.
그녀는 한국어를 좀더 배우려고 남편을 떼어놓고 한국으로 날아왔다.
현재 미국 시카고의 쉘오일에 근무 중인 남편도 2000년 서울 신촌에서 처음 만났다. "대학교 때 연세대 교환학생으로 왔다가 남편을 만났어요. 미국으로 돌아가기 전 중국으로 졸업 여행을 가면서 사귀기 시작했어요."
잠시 유학 시절을 떠올린 켈로그씨는 당시 '6·15 남북정상 회담'을 지켜보며 느낀 점이 많았다고 말했다.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만나 남북관계가 급변했죠.충격이었어요.
당시 경험을 통해 한국 정치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됐죠."
미국으로 돌아간 켈로그씨는 대학원 전공으로 아시아 정치학을 택했다.
현재 시카고대 대학원에서 '남북한 정부의 정체성'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박정희 정부가 북한을 적으로 돌린 사회 문화적 배경에 관심이 많습니다. 군사 이데올로기나 반공 이데올로기를 남한의 군사정부 유지를 위한 정치적으로 이용한 거죠." 켈로그씨는 한국 현대사를 전문가 수준으로 줄줄 꿰고 있었다.
그녀는 아시아학을 전공하는 교수가 되는 게 꿈이다. 그러러면 한국 등 아시아 국가들의 언어가 필수적이기 때문에 한국어를 집중 공부하고 있다.
켈로그씨는 한국어 코스를 마친 후에도 미국으로 돌아가 한국어를 계속 공부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들이 '한국'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 궁금했다.
두 학생은 '한국인'은 지나치게 '민족주의적'이라며 올 상반기에 벌어졌던 '버지니아 공대' 사건을 꺼냈다.
켈로그씨는 "미국인들에게 사건의 범인인 조승희는 그냥 '미친 사람'일 뿐이었죠.그런데 한국 언론은 조승희가 '한국인'이라는 점에 민감한 반응을 보였어요. 우린 전혀 생각지도 못한 관점이었어요"라며 흥분했다.
2년간 일본에서 생활했던 슬로안씨는 "한국인은 가식없이 쉽게 속마음을 내비치는 것 같다"며 "미국에도 속깊게 사귀는 한국 친구가 있다"고 말했다.
갑자기 그가 호주머니 속에서 손때 묻은 작은 수첩을 꺼내 보여 주었다.
"가난하지만 행복해요" "맵지만 괜찮아요" 엉성하지만 정갈한 한글 문장들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그는 지난 2주 동안 공부한 한글 문장들을 호주머니 크기의 작은 수첩에 메모해 갖고 다닌다고 했다.
"틈만 나면 수첩을 꺼내 봐요. 한국에 있는 동안 '한국어'에 미쳐보기로 했거든요."
인터뷰를 마치자 그는 "이제 태권도를 하러 가야 한다"며 서둘러 일어났다.
미국에서는 킥복싱을 했으나 태권도에 재미를 붙여 더 많은 한국 친구들과 사귀고 싶다며 환하게 웃었다.
성선화 기자 doo@hankyung.com
"한국말은 존칭어가 중요합니다. 할아버지께서 물으셨는데 '알았어'라고 하면 무례하다고 나무라시겠죠.'알겠습니다'라고 답해야죠. 편한 친구끼리는 그냥 '알았어'라고 반말을 하면 되고요."
한국인 선생님의 '한글' 강의를 듣는 외국인 학생들의 표정이 사뭇 진지하다.
초롱초롱한 벽안의 외국인 25명이 큰 소리로 따라한다.
"알겠습니다."
지난 5일 경희대 수원 캠퍼스. 경희대와 펜실베이니아대가 공동 진행하는 외국인 대상 한글 캠프가 열리고 있었다.
두달 일정으로 짜여진 '한국어 집중 강좌 프로그램'이다.
한글캠프는 주5일 동안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빡빡하게 진행된다.
한국어를 배우느라 비지땀을 흘리는 이들 25명은 '부시 장학생'들이다.
미국 전역에서 한국어 프로그램 참가를 희망한 500여명의 학생 중 최종 선발됐다.
미국 정부는 아랍,중국,한국어 등 외국어 전문가를 육성하기 위해 2년 전부터 '국가 안보 언어계획(NSLI: National Security Language Initiative)'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도입한 제도여서 '부시 장학생'이라고 불린다.
미 워싱턴DC의 존스홉킨스 대학원에서 아시아 경제 석사과정을 밟고 있는 저스틴 슬로안씨(26)는 한국어를 배우기 위해 지난달 18일 경희대 수원캠퍼스를 찾았다.
그의 꿈은 워싱턴 백악관에서 아시아 정책 입안자로 일하는 것이다.
슬로안씨는 고등학교 시절 '아시아'와 첫 인연을 맺었다.
"고교 2년 동안 제2외국어로 스페인어를 배웠죠.그런데 영어와 너무 똑같아 지겨웠죠.그때 한국어를 만났어요. 한국어는 '퍼즐' 같아요. 영어와는 또다른 언어 체계의 매력에 푹 빠졌죠.A학점도 받았습니다."
얼마 전 결혼해 새댁 티가 나는 애니타 켈로그씨(28)도 한국과 깊은 인연을 갖고 있다.
그녀는 한국어를 좀더 배우려고 남편을 떼어놓고 한국으로 날아왔다.
현재 미국 시카고의 쉘오일에 근무 중인 남편도 2000년 서울 신촌에서 처음 만났다. "대학교 때 연세대 교환학생으로 왔다가 남편을 만났어요. 미국으로 돌아가기 전 중국으로 졸업 여행을 가면서 사귀기 시작했어요."
잠시 유학 시절을 떠올린 켈로그씨는 당시 '6·15 남북정상 회담'을 지켜보며 느낀 점이 많았다고 말했다.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만나 남북관계가 급변했죠.충격이었어요.
당시 경험을 통해 한국 정치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됐죠."
미국으로 돌아간 켈로그씨는 대학원 전공으로 아시아 정치학을 택했다.
현재 시카고대 대학원에서 '남북한 정부의 정체성'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박정희 정부가 북한을 적으로 돌린 사회 문화적 배경에 관심이 많습니다. 군사 이데올로기나 반공 이데올로기를 남한의 군사정부 유지를 위한 정치적으로 이용한 거죠." 켈로그씨는 한국 현대사를 전문가 수준으로 줄줄 꿰고 있었다.
그녀는 아시아학을 전공하는 교수가 되는 게 꿈이다. 그러러면 한국 등 아시아 국가들의 언어가 필수적이기 때문에 한국어를 집중 공부하고 있다.
켈로그씨는 한국어 코스를 마친 후에도 미국으로 돌아가 한국어를 계속 공부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들이 '한국'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 궁금했다.
두 학생은 '한국인'은 지나치게 '민족주의적'이라며 올 상반기에 벌어졌던 '버지니아 공대' 사건을 꺼냈다.
켈로그씨는 "미국인들에게 사건의 범인인 조승희는 그냥 '미친 사람'일 뿐이었죠.그런데 한국 언론은 조승희가 '한국인'이라는 점에 민감한 반응을 보였어요. 우린 전혀 생각지도 못한 관점이었어요"라며 흥분했다.
2년간 일본에서 생활했던 슬로안씨는 "한국인은 가식없이 쉽게 속마음을 내비치는 것 같다"며 "미국에도 속깊게 사귀는 한국 친구가 있다"고 말했다.
갑자기 그가 호주머니 속에서 손때 묻은 작은 수첩을 꺼내 보여 주었다.
"가난하지만 행복해요" "맵지만 괜찮아요" 엉성하지만 정갈한 한글 문장들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그는 지난 2주 동안 공부한 한글 문장들을 호주머니 크기의 작은 수첩에 메모해 갖고 다닌다고 했다.
"틈만 나면 수첩을 꺼내 봐요. 한국에 있는 동안 '한국어'에 미쳐보기로 했거든요."
인터뷰를 마치자 그는 "이제 태권도를 하러 가야 한다"며 서둘러 일어났다.
미국에서는 킥복싱을 했으나 태권도에 재미를 붙여 더 많은 한국 친구들과 사귀고 싶다며 환하게 웃었다.
성선화 기자 d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