梁茂進 < 경남대 교수·정치학 >

지난 21~22일 6자회담 미국 측 수석대표인 크리스토퍼 힐 차관보가 평양을 전격 방문했다.

2·13 합의 초기 이행이 지체되던 상황에서 6자회담 북한 측 단장인 김계관 부상의 초청에 의한 힐의 방북은 신선한 소식이었다.

힐은 방북을 통해 2·13합의 이행의지 재확인,영변핵시설 즉각 폐쇄,6자 수석대표회담 개최 등을 북한과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북한은 힐과의 회담 후 외무성 대변인과 조선신보를 통해 앞으로 '한반도 비핵화문제와 함께 북·미 관계 정상화 문제를 포괄적으로 논의할 것'임을 강조했다.

2·13 합의 이행을 위한 관계국 간의 협의가 본격적으로 이뤄지고,그 진전에 따라 한반도의 비핵화와 북·미 관계 정상화를 위한 상황 변화가 급물살을 탈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2·13 합의서의 이행은 북·미 간의 역할도 중요하지만 남북관계의 진전에 따른 지원과 촉진도 중요하다.

북핵문제와 남북관계는 선순환적 구조를 지닌다.

남북관계 진전이 핵문제 해결의 뒷받침이 돼야 하고,핵문제 해결의 진전도 남북관계 발전에 긍정적으로 기여토록 해야 한다.

그동안 북한은 쌀 차관(借款) 유보에 대해 남측에 많은 섭섭함을 표해왔다.

먹는 문제를 협상에 이용한다느니,약속을 해 놓고 주지 않는다느니 등 그 섭섭함은 날로 더해갔다.

남측은 한반도의 비핵화(非核化)가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

한반도 비핵화를 위해서는 국제사회의 협력과 국민들의 정서를 반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쌀차관 제공 문제는 약속을 지킨다는 원칙하에서 2·13 초기조치 이행을 기다려 왔다.

힐의 방북 후 지체돼 온 2·13 합의 초기조치가 이행되기 시작했다.

미국은 3주 내 폐쇄완료를 합의한 영변핵시설 폐쇄조치가 이미 시작됐음을 전하고 있다.

북한은 25일 방코델타아시아(BDA) 자금문제의 종결을 선언하고 2·13 합의 이행에 들어간다고 밝혔다.

국제원자력기구(IAEA) 실무대표단은 26일 평양에 들어가서 영변핵시설 가동중지 및 검증 감시에 대한 협의에 착수했다.

남측도 대북 쌀차관 제공 약속이행에 들어갔으며 동시에 외교라인을 가동해 2·13 합의 이행 촉진에 나섰다.

참여정부는 출범 초기부터 북핵문제 해결과 남북관계 진전이라는 병행전략을 구사해 왔다.

미국을 비롯한 관련국들에 대한 조정과 중재를 할 수 있는 힘이 있어야 하고,북한에 대해서도 신뢰에 토대한 나름대로의 협상력이 있어야 병행전략의 성과는 도출될 수 있다.

참여정부는 6자회담이 난관에 부딪칠 때마다 '창조적 모호성'과 '중대제안' '공동의 포괄적 접근 방안' 등 수많은 아젠다를 개발하고,이를 통한 대북(對北),대미(對美) 설득 노력을 해왔다.

참여정부 임기가 8개월 정도 남아 있다.

이제부터는 한반도의 비핵화와 남북관계의 '균형발전'이 중요하다.

새로운 것을 만들기보다 기존 합의 사항을 하나하나 점검하면서 '균형발전'의 튼튼한 토대를 마련하는 것이 남은 참여정부 8개월의 과제다.

9·19 북핵 공동성명에는 관련국들이 참여하는 한반도평화체제 문제를 논의하는 평화포럼을 명시하고 있다.

부시대통령은 북한이 핵을 포기하면 한국전쟁의 종전선언 용의를 밝혔다.

정전체제에서 평화체제로의 전환을 예고하는 대목이다.

하지만 4자회담에서 나타났듯이 평화체제로의 전환에 대한 관련국들의 입장은 상이하다.

특히 남북한의 입장 차이는 뚜렷하다.

북한이 핵을 빌미로 미국과 직접 긴밀한 관계를 갖고자 해온 것은 북의 오랜 전략이다. 최근 진행되는 북미 접근을 보면 초기 밀월단계에 접어들었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이 몫을 찾아 제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지금부터 철저한 대비가 필요하다.

참여정부는 한반도 평화포럼 개최 시 관련국들의 상호 이해관계를 조정하면서 우리의 문제를 주도적으로 이끌어 나갈 토대를 마련해야 한다.

참여정부 잔여 임기 8개월의 또 하나의 과제는 본격적인 한반도 평화체제 논의에 대한 철저한 대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