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신흥 명품숍이 밀집해 있는 롯폰기힐스는 최근 홈페이지는 물론 팸플릿까지 한국어로 만들었다.

일부 명품 매장은 한국인 전담 직원을 두고 있고,한국인 단골에게는 세일 정보를 정기적으로 발송하기 시작했다.

이달 초 롯폰기힐스로 쇼핑여행을 다녀온 직장여성 김순희씨(38)는 "요즘 친구들 사이에서는 일본에서 명품을 사 비행기값을 건졌다는 식의 얘기가 화제"라고 말했다.

원·엔 환율의 지속적인 하락세로 일본 내 상품 가격이 상대적으로 낮아지면서 일본인들의 한국 쇼핑이 급감한 것은 물론,한국인들의 일본 원정쇼핑이 급증하고 있다.

상품 구매 외에도 골프 온천 등 관광비용이 줄어듦에 따라 주말을 이용해 일본 여행을 다녀오는 레저족도 증가,국내가 아닌 일본에 쇼핑과 여행경비를 떨어뜨리는 '소비 엑소더스' 행렬이 줄을 잇고 있다.

◆쇼핑.골프.온천…일본행 가속화

국내 최대 여행사인 하나투어에 따르면 올 들어 지난 20일까지 이곳을 통해 일본을 다녀온 여행자는 11만4859명으로 작년 같은 기간(6만3556명)에 비해 50% 가까이 늘었다.

2002년 월평균 2000명 정도였던 일본 여행객이 올 들어서는 평균 2만여명으로 10배가량 늘었다.

정기윤 하나투어 홍보팀 대리는 "엔저로 일본상품 가격이 떨어지는 효과가 발생하면서 독특한 디자인의 액세서리나 속옷 등을 떼어와 온라인 쇼핑몰,인터넷 카페를 통해 마니아층을 상대로 장사하는 이도 많이 생긴 것 같다"며 "후쿠오카 나가사키 벳푸 대마도 등 온천이나 골프를 겸할 수 있는 지역도 관광객이 급증하고 있다"고 전했다.

중견 여행사인 여행박사가 주말마다 50∼100석의 도쿄행 항공좌석을 받아 출발시키는 자유여행 상품 '밤부엉이'는 홈페이지에 오르자마자 매번 예약이 마감되기 일쑤다.

엔저(低)와 맞물려 젊은 여성층을 중심으로 원정쇼핑객이 늘면서 번번이 매진되고 있는 것.7월의 경우도 70석을 확보한 21일 출발분 10석만 남아있을 뿐 벌써 동이 났다.

◆일본 유통가에 '한국인 특수'

이처럼 한국인 쇼핑객이 늘어난 것은 원화 가치 상승으로 가격 부담이 줄어든 데다 다양한 제품을 고를 수 있기 때문.관계자들에 따르면 서울 유명 백화점에서 160만원대에 팔리는 이탈리아 M브랜드 코트는 도쿄 유명 백화점에서 13만엔(약 100만원)에 팔린다.

국내 백화점에서 54만원 하는 루이비통 장지갑(M61215 모노그램)은 6만4000엔(약 48만원)에 구입할 수 있다.

인천~도쿄 왕복 항공료가 30만원대(ANA 30만4000원,대한항공·아시아나 37만원)라는 점을 감안하면 코트 한 벌만 사도 여행비를 건질 수 있다는 얘기다.

서주희 여행박사 팀장은 "도쿄의 아울렛 매장은 신세계첼시의 여주 프리미엄 아울렛과 비슷한 인테리어로 젊은 여성들이 좋아한다"며 "일본 색깔이 강한 의류 액세서리 등을 찾는 여행객이 몰린다"고 설명했다.

그는 "우리나라에서 13만원 하는 나이키 운동화를 8만∼9만원에 살 수 있으며 세일이라도 하면 10만원에 두 켤레도 가능하다"고 전했다.

◆역풍 맞은 국내 유통가

한국인들의 일본 원정쇼핑 급증 여파로 국내 백화점 등 유통가는 적지않은 타격을 받고 있다.

지난 4,5월 백화점 매출은 명품 매출 실적 호조에도 불구하고 2개월 연속 하락세를 기록했다.

산업자원부에 따르면 롯데 현대 신세계 한화갤러리아 등 백화점의 지난 5월 매출액은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0.1% 줄었고,4월에도 2.3% 뒷걸음질했다.

일본인 관광객을 대상으로 한 면세점들의 영업에도 비상이 걸렸다.

롯데면세점은 올 들어 5월 말까지 일본인 구매객 수가 작년 같은 기간보다 약 14% 줄고,매출액은 17%가량 감소했다고 밝혔다.

최진융 한화갤러리아 마케팅담당 상무는 "여름 비수기에 접어든 데다 해외 여행 증가로 모처럼 살아나는 내수경기에 찬물을 끼얹지나 않을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김재일/김동민 기자 kji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