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중국산 식품을 먹으면서 자주 불안해 한다.

그 까닭은 무엇일까.

바로 건강에 좋지 않은 물질이 혹시나 포함돼있지 않을까 걱정이 되기 때문이다.

그 제품이 중국의 어느 곳에서 제조돼 어떤 경로를 거쳐 밥상 위에 올라왔는지가 불분명하기 때문이다.

갈비뼈가 들어있는 미국산 쇠고기도 마찬가지다.

분명히 뼈가 들어있는 쇠고기는 수입하지 않기로 계약을 맺었음에도 갈비뼈가 들어있기 때문이다.

이제 이 같은 경로불명의 식품은 제값을 받지 못하는 시대에 접어들었다.

제조이력과 유통경로를 고스란히 파악할 수 있는 제품만이 고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시기가 온 것이다.

제조이력과 유통과정을 실시간으로 파악할 수 있는 시스템을 트레이서빌리티(Traceability)라고 부른다.

트레이서빌리티란 추적(追跡)을 뜻하는 트레이스(trace)와 가능성을 의미하는 어빌리티(ability)가 조합된 용어다.

2000년대 초반부터 일본에서 나타나기 시작한 이 트레이서빌리티 시스템은 산업분야에서 새로운 시장을 형성하기 시작했다.

니혼게이자이는 '2010년의 유망기술과 시장'이란 책에서 트레이서빌리티를 새로운 유망 품목으로 꼽고 있다.

2010년이라면 앞으로 2년 반밖에 남지 않은 시기다.

따라서 중소기업들도 트레이서빌리티를 빠른 기간 안에 경영전반에 도입해야 할 것으로 판단된다.

특히 수요자 및 소비자들로부터 공감받는 신뢰기업이 되기 위해서는 자기회사 제품에 트레이서빌리티 시스템을 도입해야 한다.

당초 트레이서빌리티는 농·수·축산물 분야에서 가장 먼저 도입했다. 보다 안전한 먹거리를 조달하기 위해서였다. 일본 쓰쿠바에 있는 대형 슈퍼마켓에서 야채를 사면 비닐 포장지에 상품번호가 인쇄돼 있다. 이 야채를 공급한 생산자의 웹사이트에 들어가면 생산농가의 사진이 나온다. 심지어는 생산한 농부의 얼굴사진도 나오고 어떤 과정을 통해 재배했는지도 확인된다.

그래서 일본에선 이런 야채를 보고 '얼굴이 보이는 야채'라고 부른다. 덕분에 이런 야채들은 신뢰도가 무척 높다.

이런 야채들은 가격이 중국산 야채에 비해 2배 이상 비싼데도 상당히 잘 팔린다.

이 같은 이점 때문에 트레이서빌리티 시스템은 차츰 유통 물류 제조 서비스 등 모든 산업 분야에까지 확산되고 있는 추세다.

이미 고객관리(CRM) 같은 첨단 경영기법으로도 응용되고 있다.

이 시스템은 생산자 정보는 물론이고 각각의 유통 단계마다 이력 추적이 가능해 어느 시점 어떤 단계에서 무슨 문제가 발생했는지를 실시간으로 파악할 수 있게 됐다.

트레이서빌리티 시스템은 전파식별인 RFID(radio frequency identification)를 활용한다. RFID란 상품에 부착돼 있는 태그로부터 무선기술을 사용해 멀리 떨어져있는 장소에서 정보를 읽어내는 기술을 말한다.

최근 들어 소형 반도체칩을 이용해 사물의 정보를 처리하는 기술이 자리를 잡아가는 중이다.

이 기술은 앞으로 인공위성을 활용,유통과정을 추적하는 시스템도 곧 선보일 전망이다.

제조업에서는 자동차분야에서 먼저 이 시스템을 도입했다.

국내 자동차회사 가운데 이를 가장 먼저 도입한 기업은 기아자동차다.

기아차는 △실시간 납품지시 시스템 △생산 흐름 실시간 조회시스템 △실물 재고관리 시스템 등에 RFID를 활용한 트레이서빌리티를 도입했다.

이는 가동률 향상과 재고 축소를 통해 생산비용을 줄이는 데 매우 효과적이다.

또 협력사 및 물류센터는 필요한 수량만큼 기아차 부품창고로 부품을 운송하고 기아차에서는 운송차량의 위치와 부품정보를 실시간으로 파악할 수 있다.

특히 이 트레이서빌리티 분야는 정보통신 전자 반도체 농업 물류 우주항공 포장 의료 환경 등 매우 다양한 산업분야를 통합하는 시스템이기 때문에 신규 사업 분야로도 각광을 받고 있다.

이 시스템의 솔루션만 전문적으로 공급하는 기업도 늘어나는 추세다. 다국적 기업인 체크포인트도 그런 회사다.

이 회사는 제품공급을 위한 인증 추적 보안 등 솔루션을 공급한다.

종업원 3200명이 근무하는 뉴욕증권거래소 상장 기업인 이 회사는 아시아지역으로도 본격 진출하기 시작했다.

앞으로 기업이 소비자와 대중으로부터 신뢰를 받기 위해서는 트레이서빌리티 시스템을 도입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이제 중소기업들도 한시바삐 원료조달 제조 유통 판매 등 모든 과정에 투명성을 유지하고 이를 추적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이치구 한국경제 중소기업연구소장 rh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