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문제의 질적 향상,고교 내신 성적의 객관성 확보 등을 목표로 중간.기말고사 문제를 공개하라는 교육당국의 지침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일선 고교가 시험문제 공개를 하지 않고 있다. 전교조가 중심이 돼 교사들이 '시험문제 공개는 교사 평가권 침해'라는 이유를 내세워 반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출제 능력이 떨어져 문제 공개를 기피하는 교사들도 적지않는 분석이다.

고교 시험문제 공개는 내신 성적의 반영 비중을 높이는 것을 뼈대로 하는 교육인적자원부의 2008학년도 대입제도에 대해 대학들이 고교 내신 성적을 신뢰하기 힘들다며 강하게 반발하자 보완책으로 지난해 5월 교육부가 일선 학교에 지시를 내린 것. 시험문제의 질적 수준을 높이는 부수적인 효과도 노리고 있다.

그러나 교육부의 시험문제공개 지침이 내려간 지 1년이 지났지만 일선 학교는 '소 귀에 경 읽기식'으로 반응하고 있다.

서울시교육청은 18일 서울시내 220개 학교 중 홈페이지를 통해 중간.기말고사 시험문제를 공개하는 학교는 107개로 집계됐다고 밝혔다. 하지만 본보가 서울시내 220여개 인문계 고교 중 20개를 표본 조사한 결과,14곳의 학교가 시험문제를 공개하지 않고 있다. 실제 시험문제를 공개하는 학교 수가 교육청 발표보다 훨씬 적을 것으로 추정되는 대목이다. 시험문제를 공개하고 있는 학교도 홈페이지에 1~2시간가량 기습적으로 문제지를 올렸다 내리는 방식으로 교육당국의 지침을 따르는 시늉만 하는 경우가 많았다.

시 교육청의 학력평가 담당관은 "지역교육청의 보고로 시험지 공개학교의 숫자는 알고 있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학교들이 시험지를 공개하고 있는지는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며 "특히 회원만 볼 수 있도록 홈페이지를 운영하는 학교도 많아 더 그렇다"고 해명했다.

이처럼 시험문제를 공개하지 않는 학교가 많은 것은 지침을 어겨도 학교가 받는 불이익이 없기 때문이다. 서울 강남구 소재 B고교의 조모 교장은 "시험지를 공개하면 항의하는 학생과 학부모가 많아지기 때문에 문제 출제 실력이 떨어지는 교사들일수록 시험지 공개를 싫어한다"고 설명했다.

어렵사리 교사들의 동의를 얻어 시험문제를 공개하고 있는 학교의 경우 시험문제의 수준이 높아졌다고 입을 모은다. 2004년부터 자발적으로 시험 문제를 공개하고 있는 서울고의 이강호 교감은 "공개 이후 교사들이 시험문제 출제에 신경을 더 많이 쓴다"며 "문제의 질이 좋아지는 게 눈에 보일 정정도"라고 말했다. 서울 한영고 관계자도 "어차피 각 학원에는 10년치 시험문제 풀이반이 있다"며 "학교가 문제를 공개하지 않으면 사교육을 받은 학생만 유리해진다"고 설명했다.

시험문제 공개와 관련,시민단체들은 구속력이 있는 지침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윤지희 '시민과사회' 공동대표는 "지난달 30일 국회를 통과한 교육정보공개법 시행령에 시험문제 공개 조항을 구체적으로 넣어 법적 구속력을 갖출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성선화 기자 d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