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오규 경제부총리는 10일 '대학 경쟁력 강화를 위한 산학관 간담회'에서 이색적인 제안을 했다. 학계 인사를 배제하고 기업의 인사담당 임원만이 참여해 대학을 평가하는 제도를 만들자는 것. 권 부총리가 제안한 내용은 이미 재정경제부에서 상당 부분 진행되고 있는 사안이다.
그간 교육인적자원부의 위탁을 받아 한국대학교육협의회가 매년 발표하는 대학종합평가에 대해 기업들은 많은 불만을 갖고 있었다. 한 기업 인사 담당자는 "평가기준이 모호해 기업들이 자료로 쓰기에는 부족했다. 전혀 참고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대학종합평가의 기준은 '발전전략 및 비전' '사회 공헌도' 등으로 기업들의 요구와 동떨어져 있고 평가위원회도 대부분 교수들로 구성돼 있다. 원하는 대학만 평가하도록 하고 있어 지난해에는 서울대 연세대 등 주요대학들이 아예 평가를 받지 않았다. 여기에 서열화를 이유로 대학 순위도 공개되지 않고 있다. 대교협 관계자도 "기업 인사들이 실제 평가를 담당하는 인정위원이 아닌 자문위원 정도로만 참여하고 있어 기업의 시각이 반영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고 시인할 정도니 기업들 입장에서는 있으나마나한 평가제도인 셈이다.
이 같은 현실에서 권 부총리의 제안은 한번쯤 새겨 들을 만하다. 여러 기업체 인사과에는 이미 어느 대학 출신들이 회사 생활을 잘하는지,어느 학과 출신을 뽑아야 재교육이 필요없는지 등에 대한 축적된 자료가 있다. IT업체가 평가하는 대학순위,금융업계가 선호하는 학과순위 등을 매년 발표해 각 대학들이 그 기준에 맞춰 실리적인 교육을 할 수 있게끔 해야 한다.
간담회에 참석했던 각 대학 총장들과 교육부 관계자들은 권 부총리의 제안에 "산업계 인사들의 의견만 듣지 말고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참여하도록 하는 게 더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피력한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학계 등 다른 분야의 전문가들이 참여한다면 기존 대학평가처럼 '대학 입맛에 맞는' 제도로 전락할 우려가 있다. 세계적인 대학으로 거듭나고 싶다면 대학교육의 소비자라고 할 수 있는 기업의 냉정한 평가부터 받는 게 순서다.
이태훈 사회부 기자 bej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