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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태민의 마중물 논술] (5) 인질협상과 민주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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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집트 비행기는 납치하지 말 것'

    [오태민의 마중물 논술] (5) 인질협상과 민주주의
    1985년 팔레스타인 테러리스트들이 이집트항공 648기를 납치했다.

    비행기에는 98명의 승객과 승무원이 타고 있었다.

    말타 공항에 착륙한 뒤 테러리스트들은 급유를 요구했다.

    조건이 관철되지 않으면 10분에 한명씩 사형에 처하겠다고 협박했다.

    정말 10분 뒤에 이스라엘 여성이 머리에 총알이 박힌 채 비행기 밖으로 던져졌고 또 10분 뒤에도 다른 이스라엘 여성과 미국인 승무원이 희생되었다.

    때마침 이집트의 대 테러 특공대 777부대가 공항에 도착했다.

    폭탄을 터뜨려 기체에 구멍을 뚫고,테러리스트가 우왕좌왕하는 사이에 번개처럼 돌입해서 적을 사살하려 했지만 어디까지나 작전일 뿐이었다.

    너무 많은 폭탄을 터뜨리는 바람에 그 자리에서 승객 20명이 사망했다.

    범인들의 시야를 가리기 위해 터뜨린 연막탄 속에서 특공대는 무차별 사격을 가했다.

    살아남은 승객의 증언에 따르면 무차별 사격으로 쓰러진 사람들은 대체로 승객이었다고 한다.

    더 불행한 일은 비행기 밖에서 일어났다.

    테러리스트가 도망갈 경우 조준사격을 하기로 되어있던 스나이퍼들은 아비규환을 뚫고 나오는 인질들도 하나씩 쓰러뜨렸다.

    이집트 정부는 '테러리스트 전원을 사살했다'며 '작전성공'을 선포했다.

    98명의 승객 가운데 57명이 죽고,나머지 대부분도 부상한 사실에는 개의치 않았다.

    사고 조사팀은 희생자들이 누구의 총을 맞고 쓰러졌는지에 대해서는 발표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집트 당국의 작전은 어쨌건 성공했다.

    왜냐하면 그 후로 777부대가 있는 이집트의 항공기는 납치하지 않는 것이 테러리스틀 사이에서 '상식'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위험에 대한 확률 문제

    [오태민의 마중물 논술] (5) 인질협상과 민주주의
    비행기 납치 위험이 높은 지역을 경유할 때 당신이라면 어느 나라 항공기를 이용할 것인가? 다른 조건이 똑같다면 말이다.

    한 정부는 사건이 발생하면 정부가 최선을 다해서 인질협상에 임한다.

    다른 정부는 이집트처럼 특공대를 보내 인질이든 범인이든 구별하지 않고 사건을 진압한다.

    당신이 이미 납치를 당한 비행기 안에 억류되어 있는 상태라면 비행기 국적의 정부가 어느 누구와도 협상을 하는 정부라는데 감사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아직 납치를 당하지 않은 상태라면 이집트 소속의 항공사를 권하고 싶다.

    각각의 경우가 살아남을 확률이 가장 높기 때문이다.

    ◆1년새 3번째 인질사건

    한국인 근로자들을 노린 나이지리아 무장단체의 납치사건이 지난해 6월 이후 세 차례나 발생했다.

    지난 사건들은 협상으로 잘 마무리되었다.

    이번 사건의 피해자들도 모두 석방되었다.

    다행이다.

    하지만 같은 회사의 직원들이 비슷한 지역에서 비슷한 단체(?)들의 타깃이 된 것은 단순한 우연으로 보기 어렵다.

    매 사건이 마무리 될 때마다 "협상과정에서 금전적인 보상은 없었다"고 당국은 말한다.

    돈 한 푼 쓰지 않고 생명을 구하는 수완은 정말 경이롭다.

    그러나 당국의 말을 곧이 대로 믿지 않는 사람들이 있는 모양이다.

    특히 나이지리아 주변의 테러단체들이 그런 것 같다.

    혹시 같은 업종(?)에 종사하는 이들 사이에는 한국 인질에 대한 보상은 매우 후하다고 소문난 것은 아닐까?

    ◆문명국가의 어려움

    정부가 매번 인질의 안전을 최우선에 두고 인질범들과 협상을 벌이게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아무리 보상이 없었다고 공표하더라도 고급 정보를 공유하게 마련인 업자들은 다 알게 된다.

    이 나라 국민이 '봉'이라는 것을 말이다.

    한번은 인질을 구하겠지만 국민 다수의 잠재적 위험은 훨씬 높아진다.

    그렇다고 이집트 정부처럼 '묻지마 작전'을 할 수는 없는 일이다.

    비록 장기적인 위험은 상당히 줄일 수 있겠지만 당장 인질들은 희생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전체의 안전을 우선해서 '인질범들과의 협상 불가' 방침을 지지하는 사람들도 막상 자신이나 자신의 가족이 인질이 된다면 생각은 180도로 바뀔 가능성이 높다.

    인간인 이상 이를 탓할 수는 없는 일이다.

    민주국가의 정부들이 '인질범들과는 협상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공표하면서도 사건이 터질 때마다 수완 좋은 협상가를 현장에 투입하는 것은 모순된 행동이지만 이해할 수 있는 일이기도 한 것이다.

    ◆수련의 제도와 이기심

    사람들이 선호하는 대학병원은 대체로 수련의 제도를 운영한다.

    숙련된 전문의만 치료하는 것은 아니다.

    의술이라는 기준에서는 일반인과 별 차이가 없어 보이는 인턴부터 수년 차의 레지던트까지 참여하는 시술은 곧 훈련의 과정이기도 하다.

    외국의 한 통계에 의하면 수련의 제도가 있는 병원이 그렇지 않은 병원보다 의료서비스의 효과가 좋다고 한다(아톨 가완디,『나는 고백한다 현대의학을』).어쨌건 의료서비스의 발전을 위해서는 의사이자 학생인 수련의들의 실습 기회는 보장되어야 한다.

    그것이 전체 환자의 이익과 일치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신이나 자기의 가족이 중요한 수술을 받을 때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아기의 팔에 여기저기 바늘 자국을 남기고도 혈관을 찾지 못해 쩔쩔매는 수련의를 겪어본 적이 있는 부모라면 자기 아이 주변에 레지던트는 얼씬도 못하게 하고 싶어진다.

    더 냉정한 사실은 의사 본인이나 가족의 수술인 경우 평소와 마찬가지로 다양한 단계의 학생의사들이 투입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고 한다.

    실습의 위험(?)은 그 과정을 거쳤던 의사 자신들이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다.

    ◆민주주의가 숙명적으로 떠안은 모순

    날로 권리의식이 높아지고 있는 환자들에게 수련의 제도를 납득시켜야 하는 종합병원이나 인질범과의 협상에 떠밀린 민주정부나 그 고민의 본질은 비슷하다.

    민주주의가 숙명적으로 떠안고 있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다음 학생의 글을 읽고 민주주의가 떠안은 숙명적인 문제는 무엇인지와 학생이 제시한 파격적인 의견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정리해 보도록 하자.

    ▶학생글:김수경 한광여고 2학년

    이 문제에 대한 유일한,그리고 진정한 대책은 납치를 하는 동기를 없애는 것이다.

    즉 '당신들이 인질을 데리고 아무리 협박을 한다 해도 얻을 수 있는 것은 없다'라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다.

    이런 간단한 방법을 정부가 모르는 것이 아니다.

    다만 저 방법이 누군가는 꼭 해야 하지만 누구도 하고 싶지 않은 '희생'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명의(名醫) 한 사람이 탄생하기 위해서는 수많은 환자들이 그의 '실습 상대'가 되어 피해를 보아야 한다.

    마찬가지로 앞으로 수많은 기업들이 나이지리아에서 테러의 위협 없이 활동하기 위해서는 처음 몇 사람의 희생이 불가피하다.

    '사람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사람의 목숨을 지불한다'라는 것은 자유,평등,그리고 천부인권이 다른 어떤 가치보다 앞서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어찌 보면 굉장한 모순이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것은,인질 테러 문제를 진정으로 해결하고픈 정부는 '목숨 값'을 계산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처음 몇 사람의 목숨과 앞으로의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 사이에 등호를 넣을지 부등호를 넣을지 결정하는 것은 정부의 몫이다.

    그리고 어떤 선택이든지 우리는 그들을 탓해서는 안 된다.

    어느 쪽을 선택해도 비난받을 여지가 다분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보다 자세한 강의는 생글생글i(www.sgsgi.com) 동영상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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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P] 논술은 3不이다

    논술은 세 가지가 아니다.

    논술은 백일장이 아니다.

    주요 대학이 기회 있을 때마다 반복하는 말이다.

    수려한 문장,화려한 표현,흠잡을 데 없는 흐름을 보는 것이 아니다.

    하찮아서가 아니다.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채점하는 교수들도 칼럼이라도 내려면 며칠에 걸쳐 고쳐 쓴다.

    10대들에게 그 자리에서 일필휘지로 첨삭이 필요 없는 글을 써내란다면 그건 입시가 아니라 '묘기대회'라 해야 옳다.

    논술은 '골든벨'이 아니다.

    50개의 문제를 쉴 새 없이 맞히는 것은 탁월한 능력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교장 선생님까지 나와서 '명예의 전당'을 염원하는 것은 보기 민망하다.

    정보화 시대에 그 탁월한 능력이 별 소용이 없기 때문이다.

    올바른 답보다 올바른 질문이 훨씬 중요한 시대가 되었고,논술문제는 이런 시대정신을 반영하고 있다.

    웅변대회가 아니다.

    주장을 소리 높여 외치는 대회가 아니다.

    자기 생각은 주장이 아니라 가설로 표현되어야 한다.

    '나는 홍차가 좋다'는 것은 주장이다.

    무슨 말이 더 필요한가? '홍차는 소화에 좋다'면 근거를 밝혀야 할 것이다.

    채점자가 관심이 있는 것은 생각이 아니라 전개과정에서 드러나는 어떤 능력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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