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永龍 < 전남대 교수·경제학 >

주말 아침 서울대 정문 앞.관악산을 오르기 위해 모여드는 등산객들로 붐비는 곳이다.

어디 관악산뿐이랴.주말이면 서울 주변의 산들은 그 많은 등산객들의 무게를 감당하기조차 힘들 것 같다.

동행자를 기다리며 쉴 새 없이 몰려오는 버스에서 내리는 수많은 등산객들을 보며 새삼 느끼는 것들.저 많은 사람들의 생업은 무엇인가? 그 생업을 택한 이유는 무엇인가? 가진 지식과 특기는 무엇인가? 누가 어떻게 그런 사항을 알아 그 자리에 고용했나? 많은 의문에 제3자가 구체적으로 답할 수 있는 질문은 별로 없다.

수많은 익명(匿名)의 사람들이 살아가는 인간 세상에서 각종 자원을 효율적으로 동원하고 배분하는 시장의 위력을 확인할 뿐.

그런 시장은 역사적으로 사람들의 삶을 풍요롭게 하였으나,찬사는커녕 항상 도전과 시비,그리고 교정의 대상으로 여겨졌다.

오늘도 시장에서 나온 결과를 인위적으로 고치려는 시도가 끊임없이 계속되고 있다.

최근 타결(妥結)된 한·미 FTA는 자유로운 교환으로 양국 모두가 이익을 보는 조치이지만 보호무역으로 얻었던 기존의 이득을 포기해야 하는 이해 당사자들에 의해 큰 홍역을 치렀다.

그나마 그렇게 마무리된 것은 다행한 일이나,반대자들에게 자유시장은 증오의 대상이 됐다.

현 정부의 부동산 정책도 시장을 불신하고 증오하는 데서 연유한 것이다.

정부는 중과세(重課稅)와 주택 대출규제 강화 등으로 투기가 사라져 집값이 떨어지고 있다며 자화자찬하고 있을 뿐,주택 시장을 죽이고 있다는 어리석음을 경계하는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지금 한국은 주택 시장을 억압하는 정책으로 미래의 가격 폭등을 준비하고 있다.

대한민국 가정의 제1 교란 요인으로 자리 잡은 교육은 더 이상 거론해서 무엇하랴.

'경제력 집중 억제'라는 문구도 한국 사회를 무겁게 짓누르고 있는 망령이다.

금년 1월에 개정된 금융산업구조개선에 관한 법률은 기업집단에 속하는 금융계열사의 비금융계열사 주식 취득을 제한함으로써 일부 비금융계열사에 대한 적대적 인수·합병 가능성을 더욱 높여놓았다.

최근의 공정거래법 개정안도 예전보다 기업 활동의 여지를 더 넓혀준 것은 사실이지만,경제력 집중 억제라는 망령에서 벗어나지는 못했다.

세상은 넓게 열렸는데 사고와 인식은 좁은 세상에 갇혀 있는 것이다.

민생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결국 민생을 어렵게 하는 수많은 입법을 쏟아내는 국회가 과연 어느 나라 국회인지 분간하기 어렵다.

공기업이었던 KT&G와 포스코의 민영화 과정에서 대규모 국내 민간 자본의 참여는 배제됐다.

경제력 집중 억제를 위해서다.

잘 나가는 기업에 이렇다 할 주인이 없으니 쉽게 외국자본의 사냥감으로 노출되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실제로 KT&G는 칼 아이칸 연합군의 경영권 공격을 받아 곤욕을 치렀다.

포스코는 궁여지책으로 현대중공업과 자사주(自社株)를 맞교환함으로써 인수·합병 위협 시 상호 백기사 역할을 하기로 했다.

또한 이렇다 할 경영권 방어 수단이 없는 많은 기업들은 인수·합병의 대비책으로 자사주 관리에 많은 자원을 투입하고 있다.

글로벌 경쟁 시대에 기술 개발과 생산성 향상에 매진해야 할 기업들이 잘못된 입법 때문에 경영권 방어에 많은 에너지를 쏟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인수·합병 시장의 원활한 작동이 효율적 경영을 촉진하는 장치임에는 분명하지만,외국자본에 대해 국내자본을 역차별함으로써 쓸데없이 국내기업을 먹잇감으로 내모는 입법은 잘못된 것이다.

현 정부와 국회가 지향하는 이념 지평에서 개인의 자유를 우선시하는 자유주의와 시장의 번영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그래도 어둠이 짙으면 별이 보이는 법,영민(英敏)한 대한민국 국민이 끝내 어리석음에 갇혀 스스로 붕괴되는 길을 가지는 않을 것이다.

그 때까지 시장의 보복으로 적지 않은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는 점이 마음에 걸리지만,어디 역사에 비약이라는 것이 있던가.

/한국경제硏 초빙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