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외화차입을 크게 늘린 외국은행 국내지점들에 '강력한 경고' 메시지를 보냈으나 정작 놀라 요동을 치는 곳은 국내 채권시장이었다.

외은 국내지점들의 외화차입에 제동이 걸리면 국내채권 수요가 그만큼 줄고,이에 따라 채권값이 하락(금리 상승)하는 식으로 외화자금과 국내채권 시장이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외화대출에 대해서도 오는 7월부터 신ㆍ기보 출연금을 부과하고 은행 등 금융회사에 대한 외환건전성 지도를 강화하는 등 대응 강도를 점차 높여나갈 계획이어서 채권시장과 자금시장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금리 상승반전 가능성

외국은행 국내지점들은 환변동 위험을 제거하기 위해 조선업체 등 수출기업들이 매도하는 선물환을 사들이는 동시에 외화를 차입해 원화로 바꾸고,이 돈으로 국채를 매입하는 무위험 차익거래(arbitrage)를 해왔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외국은행들의 외화차입액은 원화 환율이 반등한 지난 1월 33억6000만달러,2월 28억달러로 안정세를 보였으나 3월에는 81억달러 늘었다.

이렇게 들어온 외화가 원화로 환전돼 국채 시장으로 쏟아져 들어와 3년물 국고채 금리는 지난 2월 말 연 4.88%에서 3월 말 연 4.76%로 떨어졌다.

434억달러의 외화가 외국은행을 통해 차입된 지난해에도 마찬가지였다. 콜금리 목표치가 지난해 세 차례(0.75%포인트)나 인상됐는데도 3년물 국고채 금리는 지난해 초 5.16%에서 지난해 말 4.92%로 떨어졌고 5년물 국고채 금리도 이 기간 중 5.46%에서 5.00%로 하락했다.

하지만 정부가 지난 24일 청와대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참석한 금융점검회의를 열고 단기 외화차입에 대한 규제 필요성을 거론한 뒤부터 상황이 확 바뀌었다.

최석원 한화증권 채권전략팀장은 "달러를 원화로 바꿔 국채를 사들이던 외은 국내지점들의 매수세가 위축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면서 시장 참가자들이 국채 현물과 선물을 처분하고 있다"며 "투기적인 매도물량까지 나오고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로 인해 금융점검회의가 열린 뒤 불과 이틀 만에 국고채 3년물과 5년물이 각각 0.03%포인트 오르는 등 채권금리가 상승세로 반전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외화차입 모니터링한다"

진동수 재정경제부 제2차관은 26일 정례브리핑에서 "외환거래 금융기관에 대한 건전성 지도를 강화하고 외화대출에 대해서도 7월부터 신ㆍ기보 출연금을 부과해 수요를 줄이겠다"며 외화차입 실태를 계속 모니터링하겠다고 밝혔다.

최근의 단기외채 증가가 실물 부문(조선업 등)의 수출호조에 따른 불가피한 측면이 있지만 증가 속도가 너무 빨라 억제할 필요가 있다는 것.

김성진 재경부 국제업무정책관도 "외국은행들의 단기 외화차입 급증에 대해 감독당국이 충분한 메시지를 전달했고 실제로 반응을 보이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외화차입을 늘릴 경우에는 제도를 만들어서라도 막을 생각"이라고 말했다.

재경부의 또 다른 관계자는 "외환위기 이후 건전성감독 차원에서 도입한 외화유동성 비율 규제는 국내은행에만 적용하고 있다"며 "하지만 외화차입이 계속 늘어날 경우 외은 지점에 대해서도 외화유동성 비율을 규제하는 방안을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의 이 같은 조치로 외은 국내지점들의 외화차입은 당분간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외화차입을 지나치게 억제할 경우 국내 조선업체들의 선물환 매도 물량을 받아줄 마땅한 곳이 없어져 선박수주 활동에 지장이 생기지 않을까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현승윤 기자 hyuns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