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주지고 방장이고 아무 생각도 없이 살아왔는데 대중 스님들이 저에게 책임을 지워서 할 수 없이 이렇게 살고 있습니다.

산중에 사는 사람은 자기를 숨기고 살아야 하는데 방장이 되는 바람에 내 살림 밑천이 다 드러났어요,허허….그래도 산승(山僧)이 이 자리에 머무는 것은 오로지 섣달 부채의 역할을 하기 위해섭니다."

봄 햇살이 초여름같이 따가운 26일 오후 양산 통도사 정변전.지난 일요일 불교계 삼보(三寶) 사찰의 하나인 영축총림 통도사의 최고 어른인 방장에 추대된 원명 스님(圓明ㆍ70)은 이렇게 말했다.

자기를 드러내지 않고 조용히 통도사를 이끌겠다는 뜻이다.

통도사가 새 방장을 추대한 것은 2003년 12월 월하 전 방장 입적 후 3년 여 만이다.

그동안 후임 방장 추대를 놓고 적잖은 논란이 있었던 터라 노장은 화합부터 강조했다.

"화합은 여러 사람이 함께 사는 승가의 본래 모습이요,존재 이유입니다.

출가할 때의 초심(初心)을 잃지 않는 게 화합의 본 모습이지요.

스님을 지칭하는 중(僧)은 무리 중(衆)을 뜻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러니 여럿이 더불어 살려면 화합이 첫째이지요.

그래서 옛부터 '머리를 깎고 살려면 청규를 지켜야 하고,성이 다른 여럿이 함께 살려면 화목이 필수적'이라고 가르쳐왔습니다."

원명 스님은 현대 한국불교의 대선지식이었던 경봉 스님(1892~1982)의 맏상좌로서 30년 이상 스승을 통도사 극락암에서 모셨다.

1952년 극락암으로 입산한 이래 군대생활과 영월 법흥암에서의 백일기도 외에는 한 번도 통도사를 떠나 살아본 적도 없다고 한다.

노장은 "'천고에 자취를 감춘 학이 될지언정 삼춘(三春)에 말 잘하는 앵무새의 재주를 배우지는 않겠다'고 했던 오대산 도인 한암 스님의 말씀을 특히 가슴에 새기고 살아왔다"고 했다.

"주지를 맡았을 때 제가 빗자루를 들고 나서면 다른 사람도 모두 빗자루를 들고 나왔어요.

방장이 됐다고 뭐 특별한 게 있겠어요? 그때처럼 그냥 솔선수범하면서 지낼 뿐이죠."

원명 스님은 방장이 되기 전 통도사 산내 암자인 비로암의 두어 평 남짓한 방에 살면서 손수 새벽마다 도량석을 하고 종을 울렸다.

방장이 되고서도 조석(朝夕) 예불에 다 참여하겠다고 해서 다른 스님들이 저녁 예불만은 빠지도록 말렸을 정도다.

"사바세계가 시끄러운 것은 욕심 때문입니다.

한 생각을 내려놓으면 모두에게 평화가 옵니다."

노장은 "부디 밖에서 부처를 찾지 말라"며 "불법은 온 천하에 두루해 있나니,봄바람이 불면 온 세상에 꽃이 만발한 것과 같다"고 강조했다.

통도사(양산)=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