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매춘을 양심의 가책이나 도덕적 신념 없이,생존 때문이 아니라 오직 돈을 벌기 위해 하는 행위라고 가정하면,누가 진짜 매춘부일까요?(중략)…가면을 쓰고 인격자 노릇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지요.

정치가,제복을 입은 사람들,기업가,작가들 그리고 언론인들도 아주 많지요.'('에르미따' 중에서)

필리핀 국민 작가 프란시스코 시오닐 호세(83)가 장편소설 '에르미따'(도서출판 아시아)의 국내 출간을 기념해 지난 25일 한국을 찾았다.

'에르미따'는 2차 대전 후 식민지 시절부터 1970년대에 이르기까지 창녀인 '에르미따'의 삶을 통해 부패한 필리핀 사회를 정면으로 비판한 작품이다.

호세는 필리핀 국민 문학예술상과 아시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라몬 막사이사이상을 받은 작가.

한국과의 인연도 각별하다.

1950년대부터 한국을 여러 차례 드나들며 소설가 김은국,한무숙,고 장준하씨 등과 우정을 나눴다.

그의 며느리도 재미 한국교포다.

그는 마르크스 독재 체제 아래에서 판매 금지와 투옥을 겪으며 창간한 잡지 '솔리다리다드'에 김은국의 장편 소설 '순교자'를 연재하기도 했다.

한국에 대한 관심이 남다른 것은 식민 지배와 독재 권력의 억압,부패로 물든 사회를 겪은 것까지 필리핀의 역사와 닮은 점이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한국의 부패는 현대화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생긴 현상이었지만 필리핀은 부패 그 자체만이 남아있을 뿐이라고 설명했다.

박신영 기자 nyus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