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9시: A업체 방문,10시:공장장 면담,오후 1시: B업체 경리이사와 금융상담,오후 3시:지점장에게 대출중개.'

기업은행 성서공단 지점에서 일하는 김순씨(58)의 하루 일과다.

그의 직책은 Co-RM(Corporate-Relationship Manager). 김씨는 2005년 은행에서 퇴직했다.

하지만 기업은행 대구지역 지점에서 20년 넘게 지점장 등으로 일한 경력을 평가받아 지난해 8월 기업은행 Co-RM으로 선발된 뒤 대구지역 공단에 있는 30여개 업체를 맡아 매일 현장을 누비고 있다.


은행권에 퇴직자 재고용 바람이 불고 있다. 아직 미풍이긴 하지만 저렴한 비용으로 퇴직자들의 오랜 금융 노하우를 활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은행 경쟁력을 높이는 방법으로 평가받고 있다.

기업은행은 지난해 8월 금융권 최초로 퇴직 지점장을 활용한 Co-RM 제도를 도입,40명의 퇴직 직원을 재고용한 데 이어 최근 20명을 추가 선발했다.

Co-RM은 여신 관련 자격증과 여신업무 경험 등 은행의 까다로운 기준을 통과한 퇴직 지점장들로 구성됐다. 이들은 풍부한 경험과 전문 지식을 바탕으로 거래 기업을 수시로 방문해 경영상 어려움을 직접 듣고 개선 방안을 제시한다. 소위 '기업의 금융 주치의' 역할이다. 또 거래 기업의 특성을 감안한 맞춤형 금융컨설팅 서비스를 제공하고 성장가능 업체를 발굴하는 등의 마케팅 업무도 맡고 있다. 기업은행 관계자는 "금융분야의 전문지식과 해당지역에서 오래 일하면서 거래업체와 쌓은 인간적인 유대관계를 바탕으로 금융컨설팅 서비스는 물론 영업의 첨병 역할까지 하고 있다"고 들려줬다.

국민은행은 퇴직 지점장 등을 활용한 '자점 검사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자점 검사란 각 지점에서 처리한 업무가 규정이나 지침을 지켰는지 여부를 자체적으로 점검하는 일이다. 본점 검사와는 별도로 지점의 일상적인 영업 활동을 자체적으로 상시 모니터링하는 '내부 감독관' 역할이다.

자점 검사역은 국민은행은 물론 다른 은행의 점포장급 이상 퇴직자들 중에서 선발됐다. 현재 524명의 자점 검사역이 1136개 영업점을 맡고 있다. 1인당 2개 영업점을 순회하며 검사 업무를 수행하고 있는 셈이다.

국민은행 관계자는 "그동안 영업점 단위의 자체적인 검사 업무는 독립성이 없어 점검이 미흡했다"며 "자점 검사역의 숙련된 노하우를 활용하고 영업과 검사 업무의 완전 분리를 통해 내부통제 효과를 높여 금융 사고를 예방하는 데 큰 효과를 거두고 있다"고 들려줬다.

이 밖에 한국.진흥.경기저축은행도 퇴직 은행지점장을 대상으로 공모를 통해 심사역을 선발 중이다. 금융당국 고위 관계자는 "은행들이 한해 2000여명의 신입 행원을 뽑는 상황에서 퇴직자들의 경험과 인적 자산을 재활용하는 방안도 적극적으로 모색해 나가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유병연 기자 yoob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