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文行 < 수원대 교수 moonhlee@suwon.ac.kr >

며칠 전 세미나 참석 관계로 미국을 다녀왔다.

외국 출장은 처음이 아닌 데도 이번에는 왠지 두렵고 불편했다.

아마 미국에 도착한 지 며칠 안 돼 발생한 총기사건 때문일 것이다.

호텔 로비에서는 물론 승강기 안에 설치된 TV 모니터에서도 연일 범인의 모습과 분석 기사가 쏟아져 나왔고,사람들은 웅성거렸다.

미국에서는 총기 사건이 간혹 일어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예전 같으면 그저 안됐다,혹은 한국 사람이 포함되지 않아서 다행이다 정도로 넘겼을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미국에 괜히 왔다 싶을 정도로,TV에서 범인의 국적을 언급하면 어쩌나 노심초사(勞心焦思)하면서 눈치만 보다 왔다.

심지어 택시 운전사가 으레 묻는 어디서 왔느냐는 질문에 깜짝 놀라 "일본에서요"라고 말하는 소심증까지 보이고 말았다.

귀국해서 한국 신문들을 살펴보니 아니나 다를까 한국인의 지나친 반응에 미국인들이 당황하고 있다는 기사가 있었다.

미국의 네티즌은 오히려 "외톨이에게 관심을 갖자"고 그들의 사회적 책임감에 대해 얘기하고 있는데,우리는 범인이 한국 국적(國籍)이라는 사실에 놀라 사과하고 수치스러워했다.

미국의 어느 신문은 범인이 세탁소 일을 하는 부모 밑에서 관심을 받지 못한 채 어린 시절을 보냈다는 내용의 글을 싣기도 했고,대개의 신문은 그가 정신질환을 겪고 있었다는 점을 비중 있게 다뤘다.

달라도 어떻게 이렇게 다를 수 있을까? 물론 인종 전시장이라고 할 수 있는 미국인과 단일민족으로 민족성이 그 누구보다도 강한 우리를 비교하는 것은 힘든 일이다.

그러나 만일 우리나라에서 비슷한 일이 일어났다면 범인과 동일 국적을 가진 외국인에 대해 적개심을 갖지 않았을 거라고 장담할 수 있을까? 미국인들처럼 14년 동안 범인을 제대로 돌보지 못한 우리 사회의 책임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이번 사건은 우리에게 큰 교훈을 남겨주고 있다.

그저 한국인 이민 자녀가 저지른 범행에 대해 미국인이 한국인들을 상대로 무차별 보복을 하지 않았다는 것에만 가슴을 쓸어내릴 일이 아니다.

우리는 지금도 문화적 차이와 가족과 떨어진 외로움으로 힘든 생활을 하고 있는 수많은 유학생을 두고 있다.

미국 사회에서 성공한 학생들에게만 스포트라이트를 비출 것이 아니라,그렇지 못한 다수의 학생에게 보다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또한 이 나라에도 적지 않은 외국인이 살고 있다.

그들이 우리와 더불어 살아갈 수 있도록 우리 사회의 일원으로서 보살펴주고 따뜻한 시선을 보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