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플라자] 청와대를 싸게만 지었다면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金興洙 < 건설산업연구원 부원장 >
동남아시아 여러 도시를 다니다 보면 그 아름다움에 부러움을 금치 못할 때가 있다. 다른 나라들과 비교해 우리의 도시가 그에 미치지 못함은 경제력의 문제는 아닌 것 같다. 돈이 부족해 빨리 싸게 틀에 찍은 듯한 공간을 만들던 시기도 있었으나 지금은 아니다. 이제는 1인당 국민소득 2만~3만달러 시대를 맞이해 이에 걸맞은 도시공간과 기념비적 건축물을 요구할 수 있는 여건을 갖추었다. 단순히 높고 큰 시설물이 아니라 우리의 역사와 문화가 숨 쉬는,우리만의 자랑거리가 건설돼야 할 때다.
마침 조달청에서 공청회를 개최해 '고품격 공공시설물 확보를 위한 정부공사제도 개선방안'을 발표했다. 집행부서인 조달청이 장기간 연구 결과로 정책제안을 내놓은 것도 의외이지만 고품격 시설물을 거론하였다는 것도 신선한 충격이다. 조달청은 품격 있는 건축물이 나오지 못하는 이유를 정부공사제도에서 찾고 있다. 대표적으로는 기술경쟁을 저해(沮害)하는 입·낙찰(入落札) 방식을 지목했다. 투명성과 공정성을 강조하다 보니 입·낙찰에 있어서 가격만을 중시하고 기술적 변별력은 없어지는 방향으로 흘렀다는 것이다.
해법은 무엇일까. 조달청은 총생애주기비용의 절감과 기술개발 촉진을 목표로 가치지향 입찰방식의 확충,기술평가 심사의 강화,비(非)가격 요소 등을 고려한 혁신적 발주체계의 도입을 주장했다. 대체로 방향은 잘 잡은 것 같다. 전문가들의 토론에서도 총론에서는 찬성하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각론에 있어서는,또 구체적인 집행방안에 있어서는 의견이 달리 나타난다. 대·중소 건설업체 간에도,시공과 설계 등 업종 간에도,정부부처 간에도 이해가 엇갈린다. 이미 늦어진 논의인데 다시 실행이 지연될까 걱정된다.
만약 1만여개의 일반건설업체가 본질적으로 같은 수준의 업체로 전제되고,또 다양한 건설상품의 특성이 인정받지 못하며,현행과 같은 획일적이고 공식화된 방식으로 사업자를 선정해야 한다면 조달청의 개선방안은 원천적으로 집행될 수 없는 정책이다. 왜냐하면 가치나 기술의 평가에는 주관적 판단이 개입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어렵더라도 발주처의 재량권과 유연성이 인정될 수 있다면 개선의 가능성을 기대할 수 있으나 현실적인 상황은 이를 낙관하기 어렵다.
제한된 범위에서나마 주관적인 평가가 가미돼 있는 설계시공입찰에서나 민간투자사업의 사업자 선정과정을 지켜보면 아직도 갈 길이 멀다고 느껴진다. 로비와 편법이 작용하고 많은 의혹이 사후(事後)에 제기되고 있다. 기술평가의 문제점을 보완하기 위해 평가자 명단을 대폭 확대한다거나 평가와 심사를 구분하는 방법도 시행해 보았으나 큰 효험이 있었다고 보이지는 않는다. 결국 주관적 평가가 가능하기 위해서는 평가자,정부,동료 경쟁자에 대한 믿음이 있어야 하는데 아직은 이러한 측면이 부족한 것이다.
막연히 신뢰의 기반이 쌓이기를 기다릴 수도 없고 그렇다고 지금과 같은 시설물에 만족할 수도 없다. 역발상으로 새로운 방안을 제시해 본다. 시공설계일괄입찰과 민자사업자 선정 외에도 최고가치 입찰,기술제안형 입찰 등이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주관적 심사에 대한 수요가 커질 수밖에 없다. 이러한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중앙에 상설 전담조직을 신설하자는 제안을 하는 바이다. 심사기구는 높은 보수와 공무원 신분이 보장된 50명 내외의 상근 전문가로 구성해 기술심사를 책임지고 수행토록 하는 것이다. 뒷거래의 대가가 너무 크기 때문에,또 이목(耳目)이 집중돼 있기 때문에 부당한 로비를 원천적으로 차단하면서 주관적이면서 공정한 평가가 이뤄질 수 있을 것이다.
기술요소의 정당한 평가가 가능해지면 이는 건설산업 혁신의 원동력이 될 것이다. 대부분이 수긍할 수 있는 입·낙찰 결과에 따라 건설업체의 흥망이 결정될 것이며 그 과정에서 고품격의 건축물과 아름다운 도시가 만들어질 것이다. 우리나라의 상징적인 공공건물인 청와대를 싸게만 지었다면 어떻게 되었겠는가. 비가격 요소를 평가하는 방법에 대한 논란은 앞으로도 계속되겠지만 후세에 문화유산으로 남길 수 있는 걸출한 건축물이 나올 수 있는 길을 모색해야 할 때다.
동남아시아 여러 도시를 다니다 보면 그 아름다움에 부러움을 금치 못할 때가 있다. 다른 나라들과 비교해 우리의 도시가 그에 미치지 못함은 경제력의 문제는 아닌 것 같다. 돈이 부족해 빨리 싸게 틀에 찍은 듯한 공간을 만들던 시기도 있었으나 지금은 아니다. 이제는 1인당 국민소득 2만~3만달러 시대를 맞이해 이에 걸맞은 도시공간과 기념비적 건축물을 요구할 수 있는 여건을 갖추었다. 단순히 높고 큰 시설물이 아니라 우리의 역사와 문화가 숨 쉬는,우리만의 자랑거리가 건설돼야 할 때다.
마침 조달청에서 공청회를 개최해 '고품격 공공시설물 확보를 위한 정부공사제도 개선방안'을 발표했다. 집행부서인 조달청이 장기간 연구 결과로 정책제안을 내놓은 것도 의외이지만 고품격 시설물을 거론하였다는 것도 신선한 충격이다. 조달청은 품격 있는 건축물이 나오지 못하는 이유를 정부공사제도에서 찾고 있다. 대표적으로는 기술경쟁을 저해(沮害)하는 입·낙찰(入落札) 방식을 지목했다. 투명성과 공정성을 강조하다 보니 입·낙찰에 있어서 가격만을 중시하고 기술적 변별력은 없어지는 방향으로 흘렀다는 것이다.
해법은 무엇일까. 조달청은 총생애주기비용의 절감과 기술개발 촉진을 목표로 가치지향 입찰방식의 확충,기술평가 심사의 강화,비(非)가격 요소 등을 고려한 혁신적 발주체계의 도입을 주장했다. 대체로 방향은 잘 잡은 것 같다. 전문가들의 토론에서도 총론에서는 찬성하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각론에 있어서는,또 구체적인 집행방안에 있어서는 의견이 달리 나타난다. 대·중소 건설업체 간에도,시공과 설계 등 업종 간에도,정부부처 간에도 이해가 엇갈린다. 이미 늦어진 논의인데 다시 실행이 지연될까 걱정된다.
만약 1만여개의 일반건설업체가 본질적으로 같은 수준의 업체로 전제되고,또 다양한 건설상품의 특성이 인정받지 못하며,현행과 같은 획일적이고 공식화된 방식으로 사업자를 선정해야 한다면 조달청의 개선방안은 원천적으로 집행될 수 없는 정책이다. 왜냐하면 가치나 기술의 평가에는 주관적 판단이 개입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어렵더라도 발주처의 재량권과 유연성이 인정될 수 있다면 개선의 가능성을 기대할 수 있으나 현실적인 상황은 이를 낙관하기 어렵다.
제한된 범위에서나마 주관적인 평가가 가미돼 있는 설계시공입찰에서나 민간투자사업의 사업자 선정과정을 지켜보면 아직도 갈 길이 멀다고 느껴진다. 로비와 편법이 작용하고 많은 의혹이 사후(事後)에 제기되고 있다. 기술평가의 문제점을 보완하기 위해 평가자 명단을 대폭 확대한다거나 평가와 심사를 구분하는 방법도 시행해 보았으나 큰 효험이 있었다고 보이지는 않는다. 결국 주관적 평가가 가능하기 위해서는 평가자,정부,동료 경쟁자에 대한 믿음이 있어야 하는데 아직은 이러한 측면이 부족한 것이다.
막연히 신뢰의 기반이 쌓이기를 기다릴 수도 없고 그렇다고 지금과 같은 시설물에 만족할 수도 없다. 역발상으로 새로운 방안을 제시해 본다. 시공설계일괄입찰과 민자사업자 선정 외에도 최고가치 입찰,기술제안형 입찰 등이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주관적 심사에 대한 수요가 커질 수밖에 없다. 이러한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중앙에 상설 전담조직을 신설하자는 제안을 하는 바이다. 심사기구는 높은 보수와 공무원 신분이 보장된 50명 내외의 상근 전문가로 구성해 기술심사를 책임지고 수행토록 하는 것이다. 뒷거래의 대가가 너무 크기 때문에,또 이목(耳目)이 집중돼 있기 때문에 부당한 로비를 원천적으로 차단하면서 주관적이면서 공정한 평가가 이뤄질 수 있을 것이다.
기술요소의 정당한 평가가 가능해지면 이는 건설산업 혁신의 원동력이 될 것이다. 대부분이 수긍할 수 있는 입·낙찰 결과에 따라 건설업체의 흥망이 결정될 것이며 그 과정에서 고품격의 건축물과 아름다운 도시가 만들어질 것이다. 우리나라의 상징적인 공공건물인 청와대를 싸게만 지었다면 어떻게 되었겠는가. 비가격 요소를 평가하는 방법에 대한 논란은 앞으로도 계속되겠지만 후세에 문화유산으로 남길 수 있는 걸출한 건축물이 나올 수 있는 길을 모색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