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폭 위로 안빈낙도의 여운이 가득하다.

붓이 지나간 자리에는 노란 산야와 꽃대가 있고 활짝 열린 마음까지도 보인다.

후두둑 소리를 내는 나무 가지와 들풀이 손 밑에서 자라난 것처럼 생생하다.

화선지 위의 감칠맛 나는 붓질은 예나 지금이나 문인화의 묘미다.

임농 하철경 전 한국미술협회장(55)의 36번째 개인전이 서울 인사동 갤러리 라메르에서 열리고 있다.

문인화의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하는 이번 전시에는 '고향들녘''울릉도 선산암''진관사' 등 우리 산천을 특유의 빠른 필법으로 그린 50여점이 내걸렸다.

임농의 수묵 그림은 시원하다.

빼곡한 선과 색이 화폭 위로 출렁거린다.

고향의 춘색과 추색이 싱싱하게 튄다.

그래서 그의 그림을 '대상에서 받은 인상과 감흥을 기록한 음색의 하모니'라고들 평한다.

화폭에 긴장과 파격,충만과 공허를 리드미컬하게 담아냈다는 의미다.

형상과 비형상,구상과 추상 사이를 넘나들며 슬쩍 기교를 부리는 흔적도 보인다.

하씨는 "수묵화는 붓을 가지고 살풀이 춤을 추는 행위"라며 "붓에 의지해 한바탕 신명나는 춤을 화폭 위에 부려 놓으면 새로운 생명력을 느낀다"고 말했다.

그는 그림을 그릴 때 반드시 판소리를 듣는다.

판소리야말로 최소한의 그림에 최대한의 여운과 흥을 돋우는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02)730-5454 17일까지.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