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일 A 대형마트의 서울시내 점포.한우매장 매대에는 A4용지 크기의 '축산물 판정등급서'가 놓여 있었다.

등급서 항목에는 현재 판매되고 있는 소의 등급 판정일과 등급,생산농가명만이 적혀 있었다.

판매 이후 문제가 생긴 쇠고기의 역추적이 가능한 소의 병력(病歷) 및 최종 판매시점까지 오게 된 유통 과정 등은 적혀 있지 않았다.

봄맞이 할인행사를 벌이고 있던 B 대형마트에선 부위만 같을 뿐 출고 지역이 다른 한우 고기를 한제품인 듯 섞어 팔고 있었다.

광우병 등 품질에 중대 문제가 발생했을 경우라도 유통 역추적 자체가 안 된다는 얘기다.

소비자들이 믿고 사먹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도입된 '쇠고기 이력추적관리 시스템'이 시행된 지 2년6개월째를 맞았지만 제대로 작동되지 않고 있다.

명확한 관련 법규가 마련되지 않은 채 시범사업에만 맴돌고 있는 데다,그나마 매장 직원들의 인식 부족으로 '무늬만 시행'에 그치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 타결로 미국산 쇠고기 수입이 임박해지면서 한우업계가 '앓는 소리'를 하고 있지만,국내 소비자들을 사로잡기 위한 세밀한 품질관리 등 자구노력이 크게 미흡하다는 지적이다.

축산유통 전문가들은 소의 출처와 병력 등이 기입된 '쇠고기 이력추적시스템'이 빨리 정착돼야 한우 고기가 수입산 쇠고기에 대해 경쟁력을 더 키울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하지만 현실은 '아직'이다.

한 대형 백화점 축산 담당자는 "도축시 전문 도축업자들이 가공장에서 한두 마리도 아닌 15∼20마리의 소를 한꺼번에 발라내면서 여러 소의 부위가 섞이는 경우가 비일비재"라며 "유통업체들이 전문 도축업자를 채용하지 않은 채 아웃소싱하는 것도 문제점"이라고 말했다.

쇠고기 이력추적시스템시범사업 연계매장인 C 대형마트의 서울시내 한 점포에서도 '무늬만 시행'의 단면이 그대로 드러난다.

이 점포의 축산부 관계자는 "구매대상이 주로 주부라 기계에 대한 거부감과 매장 직원에 대한 전문교육이 이뤄지지 않고 있어 이 제도를 알고 있는 고객은 극히 드물다"며 "시스템의 잦은 고장과 홍보 부족으로 소비자들의 활용도 매우 부진한 상태"라고 털어놨다.

시범사업을 주관하고 있는 농림부 관계자는 "전국에 100개의 연계 판매장과 8000곳의 한우 농가가 참여하고 있지만 관계 법규 등이 아직 제정이 안 돼 고기에 문제가 생겨도 해당 농가에 경고 등의 가벼운 시정 조치만 내리고 있을 뿐"이라며 "내년 하반기까지는 법 시행이 이뤄지도록 노력 중"이라고 말했다.

장성호 기자 ja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