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반을 끌어 온 연금개혁안이 막판 고지를 넘지 못하고 지난 2일 국회 본회의에서 부결됐다.

대신 연금개혁의 부대 조건이었던 기초노령연금법 도입안은 사실상 만장일치로 국회를 통과했다.

연금 전문가들은 "우리 정치권이 연금개혁 문제를 재정 안정화라는 본질보다는 당리당략차원에서 접근하고 있어 기초노령연금법만 통과되는 사태가 벌어졌다"며 "이는 노인 표를 의식해 정치권이 연금개혁을 두고 합종연횡하는 전형적인 연금정치(pension politics) 행태"라고 꼬집었다.

◆의견은 90% 접근했지만…

국회 본회의에서 부결 처리된 두 개의 연금개혁안은 사실상 하나의 안이나 다름 없다는 게 연금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정부·열린우리당안은 '더 내고,받는 금액을 덜 깎는'안이고,한나라·민주노동·시민단체안은 '똑같이 내고,받는 금액을 더 깎는'안이다.

가입자 입장에선 어느 쪽을 선택하나 마찬가지다.

문제는 기초(노령)연금 부분.국회를 사실상 만장일치로 통과한 정부안(기초노령연금 제정안)은 내년부터 65세 이상 노인 60%(300만명)에게 연금가입자 평균소득의 5%(월 8만9000원)를 준다는 안이다.

그러나 한나라당의 기초연금은 '65세 이상 노인의 80%와 중증장애인에게 연금가입자 평균소득의 5%를 주되,2018년까지 액수를 10%로 늘려주는 안'이다.

연금지급 대상과 범위,액수에서 차이가 있는 것이다.

한나라당은 이 기초연금안을 약간 손질해 연금법 개정안과 묶어 다시 국회에 제출한다는 계획이다.

김용하 순천향대 교수는 "기초연금 부분에서 다소 차이가 남아 있지만 지난 수년간 여야 간에 의견이 전혀 좁히지 못했던 상황을 감안하면 지금은 이견이 거의 해소된 상태"라며 "정치권이 의지만 있다면 얼마든지 타협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그런데도 정치권에서는 연금법의 처리 가능성을 높지 않게 보고 있다.

각당의 이해 관계가 엇갈려 한 가지 안으로 타협하는 일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

◆처리 가능성은 '시계 제로'

최원영 복지부 보험연금정책본부장은 "의원 모두가 연금법 개혁엔 찬성하지만 연금 재정안정화엔 관심이 적고 대신 기초(노령)연금을 자기당 주도로 도입해서 노인들에게 주게 됐다는 것을 홍보하고 싶어한다"고 말했다.

윤석명 보건사회연구원 연금보험팀장은 "연금개혁을 노인 표 획득이라는 당리당략으로 추진하려 하기 때문에 정당들로부터 원칙이나 소신을 기대하기 힘들다"며 "선진국에서 볼 수 있는 연금정치의 폐해가 벌써부터 나타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윤 팀장은 지난해 말 열린우리·민주·민노당 간 3당 연합이 형성됐다 깨지고,올 들어서는 전혀 이념 성향이 다른 한나라당·민노당 간 연합전선이 만들어진 것을 사례로 꼽았다.

또 국회 본회의 처리 과정에서 한나라당이 자신들이 제안한 연금개혁안이 부결처리됐는 데도 정부가 제안한 기초노령연금법에 찬성표를 던진 것도 같은 맥락이라고 덧붙였다.

복지부 관계자는 "정치권이 연금개혁이라는 '쓴약'은 엎지르고 표에 도움이 되는 기초연금이라는 '떡고물'만 서로 챙기려 한다"며 "이런 구도하에서는 특정인이나 특정 정당이 주도하는 연금법 개정안에 쉽게 상대방이 합의하기 힘들 것"으로 분석했다.

박수진 기자 notwom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