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에 착 감기는 느낌을 찾기 위해 크기가 실제 휴대폰과 같으면서 휜 정도가 미세하게 다른 찰흙 덩어리 30여개를 수십만번 쥐었다 놓았다 했습니다."

바나나처럼 휜 '바나나폰' 디자인 개발을 주도한 강석규 LG전자 휴대폰디자인연구소 주임연구원(32)은 이렇게 말했다.

강 연구원은 휴대폰 '그립감(grip+感:손에 쥐어지는 느낌)' 전문 디자이너다.

그는 "요즘 나온 휴대폰은 너무 넓고 얇아 손에 쥐면 불편하다"며 "사용자를 배려하지 않은 탓"이라고 지적했다.

또 "그립감은 휴대폰 디자이너가 고려해야 할 기본적인 사항인데도 기능 경쟁에 밀려 무시됐다"고 말했다.

이런 생각에서 바나나폰 개발을 시작했지만 예상대로 애로가 많았다.

둥근 본체는 처음이라 모든 걸 새로 만들어야 했다.

착 감기는 느낌을 살리기 위해 조금이라도 손에 걸리적거리면 과감하게 제거했다.

양 옆에 있는 음량 조절키와 카메라 버튼을 없앴고,배터리를 쉽게 넣고 빼기 위한 뒷면의 돌기도 깎아버렸다.

본체를 둥그렇게 만드는 작업이 가장 어려웠다.

아주 조금씩 다르게 휘어지고 높이와 두께가 각기 다른 휴대폰 모양의 찰흙 덩어리 30여개를 만들어 회사 사람들에게 돌아가며 손에 쥐어보게 했다.

이렇게 해서 최고의 그립감과 편안함을 찾았다.

강 연구원은 "왜 더 휘게 하지 않았느냐"고 묻자 "더 휘어지면 그립감이 떨어진다"고 단언했다.

모든 사람이 좋아하는 그립감을 찾기 위해 공부도 많이 했다.

강 연구원을 포함한 바나나폰팀 3명은 끊임없는 토론과 시장조사,자료조사 등을 거쳐 결론을 내렸다.

그립은 느낌이라고.

휘어진 휴대폰을 만들겠다고 하자 내부 반발이 심했다.

소비자들이 얇고 각진 휴대폰에 익숙해 무모한 도전이란 얘기였다.

강 연구원은 "심하게 반대했던 사람들에게 바나나폰을 쥐어 보게 했더니 '좋은데~' 하며 놀란 표정을 지었다"고 말했다.

그는 "디지털 기기에서는 곡선을 기피하는 경향이 있다"며 "이런 의미에서 바나나폰은 시대 흐름을 역행한 이단자"라며 웃었다.

홍익대 산업디자인학과 출신인 그는 '인간의 행동은 모두 곡선'이라는 신념으로 바나나폰 개발을 밀어붙였다.

곡선 또는 인체공학적 디자인에 대한 그의 집념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그는 수년 전 유럽 수출용 휴대폰의 아래 부분을 약간 둥그스름하게 디자인한 적이 있다.

독일 '레드닷 디자인 어워드'를 수상한 이 제품은 '가지폰'이란 별명을 얻었다.

바나나폰 개발에 미쳐 며칠씩 밤을 새우는 것은 예사였다.

한 남자 디자이너는 자신의 결혼식 전날까지 밤을 꼬박 새우고 바로 예식장으로 달려가기도 했다.

글=김정은/사진=강은구 기자 likesmil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