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뺑소니 성립요건 엄격 해석

교통사고 피해자의 상처가 가벼워 치료를 받지 않아도 될 정도였다면 말다툼을 벌이다 가해자가 현장을 이탈했더라도 뺑소니로 처벌하기는 어렵다는 대법원의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1부(주심 고현철 대법관)는 3일 추돌사고 후 피해자와 말다툼을 벌이다 현장을 이탈한 혐의(특가법 도주차량 등) 등으로 기소된 A(41)씨에게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재판부는 "피해자가 입은 상해가 2주 치료를 받으면 되는 정도에 불과한 데다 외상도 없었고 1주일분 처방약 외에 별다른 치료 없이 통증이 없어진 점, 언쟁을 벌이다 피해자가 신고를 하려고 하자 현장을 이탈한 점 등을 종합해 실제 구호 필요성이 있었다고 보기 어려워 무죄를 선고한 원심의 판단은 적절하다"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사고 경위와 내용, 상해 부위, 사고 운전자의 과실 정도, 사고 후 정황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구 도로교통법 50조1항에 의한 조치를 취할 필요가 있었다고 인정되지 않으면 이 규정의 의무를 이행하기 전 사고 현장을 이탈했더라도 처벌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구 도로교통법 50조1항은 교통사고 시 운전자나 승무원은 곧 정차해 사상자를 구호하는 등 필요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고 현행 도로교통법 54조도 이 조항을 그대로 담고 있다.

재판부는 "이 조항의 취지는 안전하고 원활한 교통을 확보하기 위한 것으로 피해자의 피해를 회복해주는 것이 아니다.

이 사건에서는 주택가 이면도로에서 사고가 난 점 등 원활한 교통을 확보하기 위해 특별한 조치를 취할 필요성이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앞서 대법원은 지난해 5월에도 부상 정도가 가벼운 피해자를 남겨두고 현장을 떠났다가 뺑소니 혐의로 기소된 운전자에게 무죄를 선고하는 등 뺑소니 성립 요건에 대해 엄격하게 해석하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이광철 기자 minor@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