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간 협상은 실무자만 하는 게 아니다.

국회와 정치권,국민까지 손발이 맞아야 협상력이 극대화된다.

하지만 이번 한·미 FTA 협상에서 두 나라의 협상단 지원 수준에는 엄청난 차이가 났다.

미국 협상단은 대통령과 의회의 강력한 지원을 등에 업고 한국 측에 시장 개방을 확대하라며 파상 공세를 폈다.

하지만 한국 협상단은 아예 판을 깨려는 세력의 거센 반발에 휘둘려야 했고 국회도 사분오열돼 거의 힘을 실어 주지 못했다.

미국 국회의원들은 국익이 걸린 협상이 내년 대선보다 더 중요하다는 태도였지만 우리나라 일부 의원들은 '정치 쇼'에 여념이 없었다.

국익을 위해 당파의 이해를 넘어 국론을 통합하는 정치권의 모습은 이번에도 한국에서 찾아볼 수 없었다.

◆의회 행정부가 전폭 지원한 미국

미 행정부와 의회는 공식·비공식 루트를 총동원해 한국에 개방 수위를 높이라고 압력을 가했다.

이라크 철군 문제 등을 놓고 행정부와 민주당이 장악한 의회가 날카롭게 대립하고 있었지만 FTA 협상과 관련해서는 한 목소리를 냈다.

오히려 통상 문제에서는 민주당이 더 강경하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한·미 양측의 입장차가 컸던 쇠고기와 자동차 부문에서 한국의 양보를 얻어내기 위해 축산업 협회 모임에 참석하고 미 자동차 3사의 최고경영자(CEO)와 만나는 등 적극적인 행보를 보였다.

부시 대통령은 "미국 소들의 건강 평가를 위해 80만번 이상의 실험을 실시했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며 "한국 등이 미국산 쇠고기 시장을 완전히 개방해야 한다"고 압박했다.

또 마이크 요한스 미 농무장관도 29일(현지시간) "미국산 쇠고기의 전면적인 수입 여부가 미 의회 FTA 비준 여부를 결정 지을 수 있다"며 쇠고기 시장 개방을 강조했다.

미 민주당 의원들은 이날 미국과 체결한 통상합의 불이행 및 불공정 무역에 대한 단속을 강화하고 이를 뒷받침하는 법안을 마련하겠다고 선언했다.

민주당 의원들은 미국의 무역 적자가 기록적인 속도로 불어나 지난해 역사상 가장 많은 7650억달러에 달했고 지난 5년간 일자리 300만개가 없어졌다며 한국 등 주요 교역 대상국의 불공정 무역행위에 대해 즉각적인 조치를 취하라고 부시 대통령에게 촉구했다.

이와 별도로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을 비롯한 민주당 중진 의원들이 미 무역대표부(USTR)에 서한을 보내 미국 공산품에 대한 한국의 오랜 무역 장벽을 없애야 한다고 강조하는 등 전방위적 압박을 가속화했다.

◆사분오열 한국

미국과 달리 한국에서는 막바지 치열한 협상이 진행 중인 가운데 우리 측 협상전략 보고서가 통째로 외부에 유출되는 등 FTA를 무산시키려는 세력들의 거센 저항이 이어졌다.

유출된 협상 전략은 언론을 통해 고스란히 보도됐고 미국 측 웬디 커틀러 수석 대표가 협상장에서 "꼼꼼히 내용을 잘 봤다"고 얘기하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펼쳐지기도 했다.

또 FTA 반대 단체들의 정도를 넘어선 격한 시위로 국론 분열 등 심각한 후유증이 불가피하다.

국익이 걸린 협상에 국회는 거의 도움을 주지 못했다.

협상전략 보고서 유출자로 국회의원이 지목되는가 하면 FTA특위 회의는 의결 정족수조차 채우지 못하는 극도의 무기력한 모습이 연출됐다.

일례로 지난달 26일 협상 보고회 때는 30명의 의원 가운데 14명만 참석,의결 정족수(15명)를 채우지도 못했고 그나마 질의를 한 의원은 11명에 그쳤다.

게다가 개인적 관심사만 질의하고 나서 회의장을 비우는 모습도 자주 목격됐다.

의회와 협상팀의 실질적인 협력을 기대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여기에 장관과 여당 고위직을 역임했던 김근태,천정배 의원이 단식 농성을 벌이고 있는데 국가 정책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자리에 있을 때는 침묵하다 이제 와서 정치적 이해관계 때문에 '쇼'를 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김남국 기자 nk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