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현대판 "고수레"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金秉柱 < 서강대 명예교수·경제학 >
예전 시골에서는 산이나 들로 소풍 가서 도시락을 먹을 때 음식물을 조금씩 떼어 던지며 "고수레"소리를 외치곤 했다. "고수레" 또는 "고시네"는 대자연의 신령들에게 바쳐 재앙을 면하려는 염원을 담았다.
오늘날 도시인들은 미신이라고 비웃을 테지만 변형된 고수레 풍습은 곳곳에서 여전하다. 전통사회에서도 그러했지만 오늘날에도 사람의 신분이 높아지면 고귀한 신분에 따르는 도덕적 의무가 따른다는 '노블레스 오블리주'란 고수레가 있다. 변화가 더디게 전개되던 농업시대가 물러가고 역동적 변화가 특징인 산업사회가 도래했다. 시장경쟁에서 승자가 월계관을 독차지할 수 있는 산업화 시대에서도 지나친 시장 경쟁의 부작용을 감안해 자선행위와 같은 고수레가 생겼다.
산업화를 넘어서 지식과 정보가 결정적으로 중요한 서비스 산업시대로 접어든 21세기에도 기업이 여러 가지 '사회적 책임'을 자의 반 타의 반 떠안고 견뎌 낸다. 이것은 비단 한국만의 현실이 아니고 시장경제가 정착된 선진국에서도 적극적으로 추진돼 오고 있는 게 사실이다.
경주 최부잣집 얘기에서 보듯이 부자가 독식(獨食)해도 좋았던 시대는 없었다. 2006년 6월 미국 제2갑부 워런 버핏(75)이 자기 재산 80% 이상(370억달러 상당)을 앞으로 여러 기간에 걸쳐 점진적으로 제1갑부 빌 게이츠 재단에 기부해 질병퇴치·교육·문화 등 박애주의 사업에 쓰도록 했다. 과거 앤드루 카네기가 17년(1902~1919)에 걸쳐 기부한 3억5000만달러,존 디 로키펠러가 48년(1889~1937)간 기부한 5억3000만달러를 2006년 6월 말 가치로 평가하면 각각 75억달러와 71억달러에 이른다. 이에 비하면 버핏의 기부가 정말 엄청난 거금임을 알 수 있다. 미국 갑부들의 기부는 모두 자발적인 쾌척(快擲)이었고 장기간에 걸쳐 점진적으로 이뤄졌다는 공통점을 가진다.
한국의 경우,부자들의 거액 기부행위에 흔히 '고수레' 성격이 묻어나 보인다. 그들의 기부행위가 자발적이기보다 권력의 겁박(劫迫)에 쫓겨 급작스럽게 이뤄지고,일단 약속하면 기부자의 재무사정을 고려하지 않고 일시에 지불해야 성이 차는 아귀 같은 국민정서가 발동한다. 작년 대표적 기업 총수 두 사람이 거금을 내놓아 화제가 되었다. 삼성 이건희 회장은 8000억원을 기부했고,현대차의 정몽구 회장 측에서는 1조원을 약속했다. 당시 두 사람이 공교롭게도 피의 사실이 있어 개운찮은 느낌이 들었다.
지난 27일 서울 고법 재판부가 정 회장 변호인단에게 "사회환원 문제가 어떻게 진행되는지,이행했는지"를 질의했다 한다. 괴이한 일이다. 작년에 기부행위가 구속 여부와 관련된 듯한 느낌이 들었다면 이번에는 형량을 두고 저울질하는 듯한 인상을 받는다. 대기업 경영인의 형량 판결을 내리기에 앞서 국민경제적 기여와 충격을 고려하는 것은 납득이 가지만,기부 여부 질의는 오해를 사기에 충분하다. 재판이 원래 그런 것인가?
최근 현대차 측 재무상태(글로비스 평가액)가 작년보다 어려워 기부금 일시 지불도 불가능해 보인다. 고수레는커녕 도시락 밥통을 통째 건네주기를 요구받는 꼴이 되었다. 당초 구속기소를 면하려는 의도가 실패한 이상 없던 일로 배짱을 부린들 시비할 근거는 없어 보인다. 노블레스 오블리주 문제만 없다면 말이다.
해법의 실마리로서 10년 이상 장기 분할 기부의 길을 터주고,기금을 하청 계열기업 등 중소기업의 연구개발과 복지후생 지원사업에 배정하는 방안을 제안해본다. 그래야 현대차도 살아남을 수 있고,계열 중소기업계도 숨통이 트인다. 추후 다른 갑부들의 기부행위를 유인하기 위해서도 필요하다.
당장 거위를 잡아 먹으면 한끼 배는 부르겠지만,알 까서 거위 숫자를 늘려 두고두고 섭생(攝生)할 기회를 버리게 된다. 개인 돈이 사회 환원돼 공(公)돈이 되면 공(空)으로 먹으려는 풍조가 있기에 제안해 보는 바이다.
예전 시골에서는 산이나 들로 소풍 가서 도시락을 먹을 때 음식물을 조금씩 떼어 던지며 "고수레"소리를 외치곤 했다. "고수레" 또는 "고시네"는 대자연의 신령들에게 바쳐 재앙을 면하려는 염원을 담았다.
오늘날 도시인들은 미신이라고 비웃을 테지만 변형된 고수레 풍습은 곳곳에서 여전하다. 전통사회에서도 그러했지만 오늘날에도 사람의 신분이 높아지면 고귀한 신분에 따르는 도덕적 의무가 따른다는 '노블레스 오블리주'란 고수레가 있다. 변화가 더디게 전개되던 농업시대가 물러가고 역동적 변화가 특징인 산업사회가 도래했다. 시장경쟁에서 승자가 월계관을 독차지할 수 있는 산업화 시대에서도 지나친 시장 경쟁의 부작용을 감안해 자선행위와 같은 고수레가 생겼다.
산업화를 넘어서 지식과 정보가 결정적으로 중요한 서비스 산업시대로 접어든 21세기에도 기업이 여러 가지 '사회적 책임'을 자의 반 타의 반 떠안고 견뎌 낸다. 이것은 비단 한국만의 현실이 아니고 시장경제가 정착된 선진국에서도 적극적으로 추진돼 오고 있는 게 사실이다.
경주 최부잣집 얘기에서 보듯이 부자가 독식(獨食)해도 좋았던 시대는 없었다. 2006년 6월 미국 제2갑부 워런 버핏(75)이 자기 재산 80% 이상(370억달러 상당)을 앞으로 여러 기간에 걸쳐 점진적으로 제1갑부 빌 게이츠 재단에 기부해 질병퇴치·교육·문화 등 박애주의 사업에 쓰도록 했다. 과거 앤드루 카네기가 17년(1902~1919)에 걸쳐 기부한 3억5000만달러,존 디 로키펠러가 48년(1889~1937)간 기부한 5억3000만달러를 2006년 6월 말 가치로 평가하면 각각 75억달러와 71억달러에 이른다. 이에 비하면 버핏의 기부가 정말 엄청난 거금임을 알 수 있다. 미국 갑부들의 기부는 모두 자발적인 쾌척(快擲)이었고 장기간에 걸쳐 점진적으로 이뤄졌다는 공통점을 가진다.
한국의 경우,부자들의 거액 기부행위에 흔히 '고수레' 성격이 묻어나 보인다. 그들의 기부행위가 자발적이기보다 권력의 겁박(劫迫)에 쫓겨 급작스럽게 이뤄지고,일단 약속하면 기부자의 재무사정을 고려하지 않고 일시에 지불해야 성이 차는 아귀 같은 국민정서가 발동한다. 작년 대표적 기업 총수 두 사람이 거금을 내놓아 화제가 되었다. 삼성 이건희 회장은 8000억원을 기부했고,현대차의 정몽구 회장 측에서는 1조원을 약속했다. 당시 두 사람이 공교롭게도 피의 사실이 있어 개운찮은 느낌이 들었다.
지난 27일 서울 고법 재판부가 정 회장 변호인단에게 "사회환원 문제가 어떻게 진행되는지,이행했는지"를 질의했다 한다. 괴이한 일이다. 작년에 기부행위가 구속 여부와 관련된 듯한 느낌이 들었다면 이번에는 형량을 두고 저울질하는 듯한 인상을 받는다. 대기업 경영인의 형량 판결을 내리기에 앞서 국민경제적 기여와 충격을 고려하는 것은 납득이 가지만,기부 여부 질의는 오해를 사기에 충분하다. 재판이 원래 그런 것인가?
최근 현대차 측 재무상태(글로비스 평가액)가 작년보다 어려워 기부금 일시 지불도 불가능해 보인다. 고수레는커녕 도시락 밥통을 통째 건네주기를 요구받는 꼴이 되었다. 당초 구속기소를 면하려는 의도가 실패한 이상 없던 일로 배짱을 부린들 시비할 근거는 없어 보인다. 노블레스 오블리주 문제만 없다면 말이다.
해법의 실마리로서 10년 이상 장기 분할 기부의 길을 터주고,기금을 하청 계열기업 등 중소기업의 연구개발과 복지후생 지원사업에 배정하는 방안을 제안해본다. 그래야 현대차도 살아남을 수 있고,계열 중소기업계도 숨통이 트인다. 추후 다른 갑부들의 기부행위를 유인하기 위해서도 필요하다.
당장 거위를 잡아 먹으면 한끼 배는 부르겠지만,알 까서 거위 숫자를 늘려 두고두고 섭생(攝生)할 기회를 버리게 된다. 개인 돈이 사회 환원돼 공(公)돈이 되면 공(空)으로 먹으려는 풍조가 있기에 제안해 보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