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4년 5월,청소년적십자중앙학생협의회가 '스승의 날'을 제정하면서 다짐했던 결의문을 상기해 본다. "인간의 정신적 인격을 가꾸고 키워주는 스승의 높고 거룩한 은혜를 기리어 받들며 청소년들이 평소에 소홀했던 선생님들에 대한 존경과 감사를 불러일으켜…." 마음으로부터 우러나오는 학생들의 꾸밈없는 진솔한 마음이 절절히 배어있는 듯하다.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스승의 날은 이내 거국적인 행사로 확산되었고,윤석중 선생이 작사한 스승의 노래는 전국 곳곳에서 메아리쳤다. 이러한 스승의 날이건만 뜻하지 않게 정치적인 핍박도 받았다. 유신정권은 시정쇄신이라는 명분 아래 순수한 사은행사까지도 규제하는 어처구니없는 일을 벌인 것이다. 이후 스승의 날은 10년 만에 부활됐다.

이제 스승의 날이 또 한번의 시련을 겪고 있다. 금품수수 논란이 계속되더니,마침내 5월15일의 '스승의 날'을 변경해버리자는 여론이 비등해지고 있는 것이다. 스승의 날이 오면 학교가 아예 교문을 걸어 잠그고,모든 교사들이 부도덕한 집단으로 매도 당하는 상황에서 이를 존속할 하등의 이유는 없다고 오히려 선생님들이 항변하고 있다.

엊그제 서울시교육청은 빠르면 올해부터 스승의 날을 학년말로 옮기겠다고 밝혔다. 12월15일과 2월15일이 검토되고 있는데,학부모와 교사의 부담을 최소화할 수 있다 해서 후자가 유력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학교는 있어도 스승은 없다"는 비아냥이 마치 확인되는 것 같아 자괴감마저 든다는 교사들이 많다.

따지고 보면 스승의 날 논란은 학부모들의 책임이 크다. '오직 내 자식에게만은 특별한 대우'를 요구하는 학부모들의 이기심이 잘못된 관행을 낳았기 때문이다.

앞으로 스승의 날이 확정되기까지는 명칭을 포함해서 넘어야 할 산이 여럿 있다. 이런 과정 속에서 양심적이고 사명에 가득찬 교사들의 마음 고생은 이만저만이 아닐 것 같다. "부모로부터는 생명을 받았으나 스승으로부터는 생명을 보람있게 하기를 배웠다"는 플루타르크의 '영웅전' 구절이 새삼스럽다.

박영배 논설위원 youngba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