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강업계의 포식자 '미탈'] 2위 아르셀로 어떻게 삼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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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1월13일 저녁 영국 런던에 있는 락시미 미탈 회장의 저택에서 파티가 열리고 있었다.
세계 2위 철강회사 아르셀로의 최고경영자(CEO) 가이 돌도 여느 사교 파티 때처럼 여흥을 즐기고 있었다.
미탈 회장이 그런 돌에게 갑자기 청천벽력 같은 말을 던졌다.
"아르셀로를 인수하고 싶소." 돌은 잠시 말을 잊었다.
급한 김에 "합병한 뒤에 문화적 차이로 실패하는 경우가 많다"고 둘러댔다.
미탈 회장은 이런 돌의 반응을 '거절'로 받아들였다.
2주 후인 1월26일 돌 CEO는 캐나다 토론토로 가기 위해 독일 프랑크푸르트 공항을 찾았다.
그때 미탈 회장이 그를 휴대폰으로 찾았다.
"내일 아르셀로를 226억달러에 인수하겠다는 공식 발표를 하겠소." 2006년 유럽 정·재계를 뒤흔든 미탈스틸의 아르셀로 인수전은 미탈과 돌의 단 한 번의 만남과 또 다른 한 번의 전화통화로 시작됐다.
1976년 창업 이후 29차례의 M&A를 통해 세계 1위 철강 기업을 일군 미탈 회장.그의 과감성은 아르셀로 인수에서도 여실히 드러났다.
미탈스틸로선 2위 아르셀로만 인수하면 세계 철강시장 점유율 10%(연간 철강 생산능력 1억1000만t)의 벽을 넘을 수 있었다.
다음 경쟁자인 신일본제철의 3배 규모로 몸집을 키울 수 있었다.
그 정도로 중대한 사안이었기에 오래 끌면 안 된다는 강박이 있었던 것 같다.
미탈이 이처럼 선제공격을 가했지만 아르셀로의 저항도 예상을 뛰어넘을 만큼 완강했다.
아르셀로 이사회는 물론 최대주주인 룩셈부르크 정부,공장이 있는 스페인 프랑스 벨기에 정부와 각국 정치인들은 한결같이 미탈스틸과 미탈 회장을 성토하고 나섰다.
유럽 시민들까지 "유럽의 왕관을 뺏으려 한다"며 흥분했다.
한편으론 미탈의 출신 배경인 인도와 전형적 가족경영을 하고 있는 미탈스틸 등에 대한 반감도 확산됐다.
자칫 보호주의와 인종주의로 흐를 위험이 다분했다.
불똥이 멀리 아시아까지 튀어 신일본제철도 적대적 M&A를 막기 위한 포이즌 필(독소조항)을 만든다고 부산을 떨었다.
애널리스트들은 미탈이 인수안을 철회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봤다.
미탈은 물러서지 않았다.
자신을 경원시하는 유럽을 휘젓고 다니며 합병의 필요성을 끊임없이 설명했다.
"BHP빌리턴이나 리오틴토,CVRD 같은 철광석 업체와 자동차 회사 등 철강 제품 수요 업체들은 합병을 통해 판매와 구매 협상력을 키워왔다.
그러나 철강 업계만 조각조각 나 있어 협상력이 훨씬 떨어진다." 주요 철강 업체들이 합병에 소극적이면 '고래 싸움에 새우등' 신세가 될 수 있다는 주장이었다.
아르셀로는 여전히 미탈스틸의 인수 가격이 너무 낮다며 콧방귀를 뀌었다.
미탈은 결심한 듯 새 카드를 들어보였다.
5월15일 인수 가격을 기존 226억달러에서 258억달러로 올렸다.
아르셀로도 만만찮았다.
다음 날인 26일 아르셀로 이사회는 러시아 최대 철강회사인 세버스탈에 136억달러 규모의 합병을 제안한다고 발표했다.
이것이 성사되면 미탈은 2위로 밀려나고 아르셀로-세버스탈이 1위로 등극하게 된다.
돌 CEO는 브릭스 시장에서 성장 비전을 갖고 있는 아르셀로에 세버스탈이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선진시장과 이머징 마켓에서 골고루 주도권을 쥘 수 있다는 명분도 내세웠다.
일이 생각지 않은 쪽으로 꼬이며 미탈이 상황을 역전시키기는 더욱 어려워 보였다.
5개월에 걸친 M&A 전쟁이 미탈로서는 인정하기 힘든 첫 패배로 막을 내리는 듯했다.
이때 미탈은 마지막 역공을 취했다.
세버스탈 인수안이 아르셀로 주주 이익에 반한다고 적극 알리고 헤지펀드를 규합,세버스탈 인수안을 철회토록 아르셀로에 압력을 가했다.
또 아르셀로 경영진을 배임죄로 미국 법원에 제소하기도 했다.
당근도 꺼내들었다.
인수액을 333억달러로 다시 높였다.
첫 제안가에 비하면 49% 늘어난 금액이다.
이번 '당근'은 그 효과가 막강했다.
한번에 전세를 뒤집었다.
1대 주주인 룩셈부르크 정부의 지분이 5.6%일 정도로 소유가 자잘하게 분산돼 있는 구조에서 획기적으로 높인 가격의 힘은 주효했다.
결국 6월 말 아르셀로 이사회는 미탈 측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이번 인수전은 미탈의 적대적 M&A 공세와 기법이 얼마나 집요한지 보여준다.
또 1990년대 말부터 불어닥친 철강 업계 M&A의 정점이자 향후 또 다른 기업사냥의 출발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미탈스틸은 2015년까지 연산 능력을 2억t으로 두 배가량 늘린다는 목표를 세웠다.
이는 M&A를 통해 이뤄질 수밖에 없다.
지난 2월 초 포스코를 방문한 아르셀로-미탈의 롤랜드 융크 경영위원회 위원은 "미탈이 아르셀로를 인수하는 과정에서 프랑스 등 유럽 국가들이 저지하려 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는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
험난한 아르셀로 인수 과정에서 보여준 미탈 회장의 저돌성이라면 충분히 포스코를 비롯한 경쟁 회사들을 괴롭힐 것으로 보인다.
장규호 기자 danielc@hankyung.com
세계 2위 철강회사 아르셀로의 최고경영자(CEO) 가이 돌도 여느 사교 파티 때처럼 여흥을 즐기고 있었다.
미탈 회장이 그런 돌에게 갑자기 청천벽력 같은 말을 던졌다.
"아르셀로를 인수하고 싶소." 돌은 잠시 말을 잊었다.
급한 김에 "합병한 뒤에 문화적 차이로 실패하는 경우가 많다"고 둘러댔다.
미탈 회장은 이런 돌의 반응을 '거절'로 받아들였다.
2주 후인 1월26일 돌 CEO는 캐나다 토론토로 가기 위해 독일 프랑크푸르트 공항을 찾았다.
그때 미탈 회장이 그를 휴대폰으로 찾았다.
"내일 아르셀로를 226억달러에 인수하겠다는 공식 발표를 하겠소." 2006년 유럽 정·재계를 뒤흔든 미탈스틸의 아르셀로 인수전은 미탈과 돌의 단 한 번의 만남과 또 다른 한 번의 전화통화로 시작됐다.
1976년 창업 이후 29차례의 M&A를 통해 세계 1위 철강 기업을 일군 미탈 회장.그의 과감성은 아르셀로 인수에서도 여실히 드러났다.
미탈스틸로선 2위 아르셀로만 인수하면 세계 철강시장 점유율 10%(연간 철강 생산능력 1억1000만t)의 벽을 넘을 수 있었다.
다음 경쟁자인 신일본제철의 3배 규모로 몸집을 키울 수 있었다.
그 정도로 중대한 사안이었기에 오래 끌면 안 된다는 강박이 있었던 것 같다.
미탈이 이처럼 선제공격을 가했지만 아르셀로의 저항도 예상을 뛰어넘을 만큼 완강했다.
아르셀로 이사회는 물론 최대주주인 룩셈부르크 정부,공장이 있는 스페인 프랑스 벨기에 정부와 각국 정치인들은 한결같이 미탈스틸과 미탈 회장을 성토하고 나섰다.
유럽 시민들까지 "유럽의 왕관을 뺏으려 한다"며 흥분했다.
한편으론 미탈의 출신 배경인 인도와 전형적 가족경영을 하고 있는 미탈스틸 등에 대한 반감도 확산됐다.
자칫 보호주의와 인종주의로 흐를 위험이 다분했다.
불똥이 멀리 아시아까지 튀어 신일본제철도 적대적 M&A를 막기 위한 포이즌 필(독소조항)을 만든다고 부산을 떨었다.
애널리스트들은 미탈이 인수안을 철회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봤다.
미탈은 물러서지 않았다.
자신을 경원시하는 유럽을 휘젓고 다니며 합병의 필요성을 끊임없이 설명했다.
"BHP빌리턴이나 리오틴토,CVRD 같은 철광석 업체와 자동차 회사 등 철강 제품 수요 업체들은 합병을 통해 판매와 구매 협상력을 키워왔다.
그러나 철강 업계만 조각조각 나 있어 협상력이 훨씬 떨어진다." 주요 철강 업체들이 합병에 소극적이면 '고래 싸움에 새우등' 신세가 될 수 있다는 주장이었다.
아르셀로는 여전히 미탈스틸의 인수 가격이 너무 낮다며 콧방귀를 뀌었다.
미탈은 결심한 듯 새 카드를 들어보였다.
5월15일 인수 가격을 기존 226억달러에서 258억달러로 올렸다.
아르셀로도 만만찮았다.
다음 날인 26일 아르셀로 이사회는 러시아 최대 철강회사인 세버스탈에 136억달러 규모의 합병을 제안한다고 발표했다.
이것이 성사되면 미탈은 2위로 밀려나고 아르셀로-세버스탈이 1위로 등극하게 된다.
돌 CEO는 브릭스 시장에서 성장 비전을 갖고 있는 아르셀로에 세버스탈이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선진시장과 이머징 마켓에서 골고루 주도권을 쥘 수 있다는 명분도 내세웠다.
일이 생각지 않은 쪽으로 꼬이며 미탈이 상황을 역전시키기는 더욱 어려워 보였다.
5개월에 걸친 M&A 전쟁이 미탈로서는 인정하기 힘든 첫 패배로 막을 내리는 듯했다.
이때 미탈은 마지막 역공을 취했다.
세버스탈 인수안이 아르셀로 주주 이익에 반한다고 적극 알리고 헤지펀드를 규합,세버스탈 인수안을 철회토록 아르셀로에 압력을 가했다.
또 아르셀로 경영진을 배임죄로 미국 법원에 제소하기도 했다.
당근도 꺼내들었다.
인수액을 333억달러로 다시 높였다.
첫 제안가에 비하면 49% 늘어난 금액이다.
이번 '당근'은 그 효과가 막강했다.
한번에 전세를 뒤집었다.
1대 주주인 룩셈부르크 정부의 지분이 5.6%일 정도로 소유가 자잘하게 분산돼 있는 구조에서 획기적으로 높인 가격의 힘은 주효했다.
결국 6월 말 아르셀로 이사회는 미탈 측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이번 인수전은 미탈의 적대적 M&A 공세와 기법이 얼마나 집요한지 보여준다.
또 1990년대 말부터 불어닥친 철강 업계 M&A의 정점이자 향후 또 다른 기업사냥의 출발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미탈스틸은 2015년까지 연산 능력을 2억t으로 두 배가량 늘린다는 목표를 세웠다.
이는 M&A를 통해 이뤄질 수밖에 없다.
지난 2월 초 포스코를 방문한 아르셀로-미탈의 롤랜드 융크 경영위원회 위원은 "미탈이 아르셀로를 인수하는 과정에서 프랑스 등 유럽 국가들이 저지하려 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는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
험난한 아르셀로 인수 과정에서 보여준 미탈 회장의 저돌성이라면 충분히 포스코를 비롯한 경쟁 회사들을 괴롭힐 것으로 보인다.
장규호 기자 daniel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