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시국회 회기가 이틀밖에 남지 않았는데도 법안심의가 뒤죽박죽이어서 걱정이다. 정당 간의 야합에 의해 시장원리에 반하는 조항들이 살아남는가 하면 실효성도 없는 인기영합적 법안들은 일사천리로 통과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런가 하면 촌각(寸刻)을 다투는 법안들은 정치적 견해차로 혼란만 거듭하고 있으니 한심한 노릇이다.

최근 국회 건설교통위원회를 통과한 주택법 개정안은 정치권의 무원칙을 드러낸 사례다.

분양가 상한제와 분양가내역공시제(분양원가공개제)를 핵심으로 하는 주택법 개정안은 단기적으로 신규 주택의 가격은 떨어뜨리겠지만 중장기적으로 민간업체의 공급 감소를 야기한다는 점에서 두고두고 주택정책의 발목을 잡을 가능성이 크다. 그런 데도 원내 제1당인 한나라당은 당초 반대입장을 접고 약간의 내용수정을 이유로 슬그머니 통과시켜 주는 편법을 동원했다.

정치적 야합인 셈이다.

국회 본회의에 회부된 이자제한법도 경제원리에 어긋난다는 점에서 주택법과 다를 바 없다.

서민들의 과중한 이자 부담을 줄여줘야 한다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실효를 거두기는 어렵다.

현행 대부업법상의 금리 상한선 연 66%조차 지켜지지 않고 있는 현실에서 이자율제한을 40%로 낮춘다면 오히려 급전(急錢)이 필요한 서민들은 지하경제로 숨어들어 사채업자로부터 더 높은 금리에 시달릴 우려가 높다.

인기영합적인 입법의 대표적인 사례다.

반면 출자총액제한 적용대상 축소를 골자로 한 공정거래법 개정안은 정무위를 통과한 뒤 법사위에서 열린우리당 의원들의 추가 심의 요구로 발이 묶였다는 소식이다. 이미 기정사실로 공표된 정부정책이 무산될 위기에 직면한 셈이다.

특히 개정안에 따라 공정거래위원회가 오는 4월 중 출총제 적용 기업집단을 새롭게 지정해야 할 마당에 법사위마저 통과하지 못하고 있으니 어이없을 뿐이다. 사학법 재개정 문제를 놓고 정당 간 힘겨루기가 계속되면서 국민연금법의 국회 통과 전망이 불확실해졌다. 한마디로 국회 법안심의는 요지경 속이나 다름없다.

정치권이 국민들로부터 불신(不信) 받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국회가 법안심의를 허술하게 하는 것은 직무유기라 해도 과언은 아니다.

한나라당이건,열린우리당이건 지금부터라도 당리당략을 떠나 민생법안들을 '제때''제대로' 처리하는 모습을 보여주기 바란다.

이것이 민심을 얻는 지름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