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훈 대법원장은 21일 "사법에 대한 신뢰도는 여전히 지극히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다"며 "재판 과정에서 당사자들을 적극 설득해 재판결과에 승복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대법원장은 이날 대법원에서 열린 신임 판사 및 예비판사 임명식에서 "개개의 사건 내면에는 재판 당사자들의 애잔한 삶의 역정과 고달픈 생활의 애환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는 사실을 법관들이 알아야 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재판은 기본적으로 과거의 사실을 판단 대상으로 삼지만 판단 결과는 오히려 재판 당사자와 주위의 미래관계를 형성해 주는 역할을 하게 된다"며 "올바르고 정의로운 판결 하나가 사회와 그 구성원이 안고 있는 질병을 치유해 건강한 사회를 만들 수 있고 국가가 나아갈 길을 제시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 대법원장의 이 같은 발언은 전날 정영진 서울지법 부장판사가 "사법불신에 이용훈 대법원장도 책임이 있다"며 거취에 대한 결단을 요구한 가운데 나와 관심을 끌고 있다. 이 대법원장은 "재판 당사자들을 설득하고 이해를 구하는 장소는 바로 법정"이라며 공판중심주의를 통해 사법불신을 해소하겠다는 의지를 나타냈다.

이날 임명식에는 신임 판사 97명과 사법연수원을 수료한 예비판사 90명 등 법관 187명이 임명됐다. 신임판사 가운데 여성 법관은 47명으로 48%에 달해 '여풍(女風)'이 거셌으며 사법부 내 여성법관은 예비판사를 포함해 전체의 19.1%인 431명으로 늘었다.

또 여러 분야 전공자와 전문가들이 법관으로 임명돼 법원 내부의 다양한 목소리가 형성될 것으로 보인다. 예비판사 90명 중 컴퓨터공학,전기공학,건축학 등 이공계열 전공자가 9명에 달했고 교사,변리사,약사,동시통역사 등 전문직 자격증 소지자도 8명이다.

특히 김희영 대전지법 천안지원 예비판사는 윤나리 서울중앙지법 판사(34기)에 이어 한국과학기술원(KAIST) 출신으로는 두 번째로 법조계에 진출했다. 영문학을 전공한 정하경 서울남부지법 예비판사는 동시통역 자격증이 있는 데다 미국 공인회계사 시험에도 합격했다.

임명장을 받은 판사와 예비 판사 가운데는 김용태 대구지법 판사와 차지원 서울중앙지법 판사 등 '부부 법관'이 10쌍에 달해 관심을 모았다.

정태웅 기자 redae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