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잘 한다'는 소문이 업계에 파다했다.


20개월 만에 매출 신장률 1000%.


다 망해가던 강남 K한의원을 사무장인 그가 살렸다는 입소문이 확 퍼졌다.


몸값이 상한가를 치던 2002년.


이창호 K한의원 사무장(37)은 사표를 던지고 아예 병원컨설턴트로 변신했다.


‘리얼메디(RealMedi)’라는 ‘병원을 치료하는 병원’을 차린 것.


환자를 치료하는 곳이 병원이지만, 병원도 때론 아프다.


국내 의료시장 경쟁이 점점 격화되면서 강남에도 손익분기점를 못 넘기는 병원들이 속출하고 있다.


적자를 견디지 못하고 문닫기 직전, 응급실의 중환자 같은 얼굴로 이창호 대표를 찾는 개업의들이 줄을 잇는다.


노련한 의사처럼 그는 병원의 환부에 청진기를 대고 신음 소리를 경청한다.


지금까지 그의 처방으로 새 생명을 얻은 병원은 100여곳.

개업 2년 만에 리얼메디는 병원 마케팅·컨설팅 업계의 신화로 우뚝 섰다.


이 대표의 주특기는 ‘특화진료 컨설팅’.


입냄새 전문 한의원, 폐 전문 한의원, 살찌기 전문 한의원, 요실금 전문 산부인과, 다리 성형 전문병원 등 수많은 전문병원들이 그의 컨설팅을 받아 탄생했다.


“어느날 TV에서 입냄새로 고생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는 방송을 봤어요.


아는 한의사한테 물었죠.


입냄새의 원인이 뭐냐고.


그랬더니 70%가 폐, 위장 등 내장계 질환 때문이라고 하더라고요. 바로 이거다 싶었죠.”


2005년 그의 권유로 서울 구의동 J한의원은 입냄새 전문으로 ‘리뉴얼’했다.


리뉴얼 1년 만에 서울 지역 한의원 평균 매출을 훌쩍 넘겼다.


그는 ‘대박 아이디어’를 어디서 어떻게 구할까? 그의 대답은 의외다. “철저한 시장 조사와 수요 분석에서 나옵니다.”


살찌기 전문 한의원의 탄생 과정을 보자. ‘S라인’ 신드롬을 타고 우후죽순처럼 생겨나는 다이어트 클리닉을 지켜보면서 “살 때문에 고민하는 사람들과는 반대로 살이 찌지 않아 고민하는 이들도 있게 마련”이라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다이어트 역발상’으로 ‘블루오션’을 개척해보겠다고 작심한 그는 바로 시장조사에 나섰다.


수요층이 200만명이나 된다는 계산이 나왔다.


특히 ‘3㎏’의 비밀이 주효했다.


살찌기가 소원인 사람들 대부분이 더도 덜도 말고 딱 ‘3㎏’만 찌고 싶어했다.


그래서 제안한 한의원 이름이 ‘플러스 한의원’, 홈페이지는 ‘3㎏플러스닷컴’. 인터넷 검색창에 ‘살찌기’를 치면 플러스 한의원이 뜬다.



특화 병원의 가장 큰 장점은 경기를 덜 탄다는 것이다.


일단 안정 궤도에 접어들면 경기에 상관없이 매출이 꾸준하다.


‘업 세일(Up Sale)’ 효과도 있다.


“입냄새 때문에 병원을 찾은 환자라도 다른 보약을 구매합니다.


마치 껌 하나 사러 슈퍼마켓에 갔다가 눈에 보이는 음료수까지 사들고 나오는 것과 같은 심리예요.”


입냄새 전문 J한의원은 지난해 입냄새 진료 수입과 맞먹는 수익을 보약 판매로 올렸다.


일단 특화 분야로 인지도를 높이면 적은 비용으로 추가 수입을 낼 수 있다.


이 대표의 시장조사 비법이 뭐냐고 물어봤다.


“확률과 통계의 마술이라고나 할까요….”


신문에 광고를 낸 뒤 몇 통의 문의 전화가 오는지 관찰하고,그 결과를 마케팅에 반영하는 식이다.


병원업계에 몸담기 전 패션 마케팅을 하면서 배운 ‘트렌드 읽기’도 병원 수요 분석의 정확도를 높이는 데 밑거름이 됐다.


리얼메디로부터 인터넷 광고 아이디어를 많이 얻는다는 김미자 다리성형 전문병원 미쉘의 홍보실장은 “리얼메디의 마케팅기법은 선구적이면서도 현실적이어서 시장에 잘 먹힌다”며 “리얼메디 기법을 벤치마킹하는 업체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전했다.


이 대표는 1회 컨설팅비로 4000만원까지 받을 정도로 병원업계에선 부동의 입지를 구축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패션업계를 거쳐 병원 사무장 생활을 하면서 마케팅 내공을 쌓기까지 남모르는 고충도 많았다고 털어놓는 이 대표.그동안 가장 힘들었던 고비에 대해 들려달라는 주문에 좋아하는 시로 답하겠다며 웃었다.

그가 가장 즐겨 읊는 시는 서정주의 ‘국화 옆에서’다.


“한 송이 국화 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


성선화 기자 d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