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그룹 B사장은 얼마 전 와인 때문에 곤욕을 치렀다.

"라운딩이 끝난 뒤 그룹 회장이 '오늘의 와인'을 추천하라고 하더군요.

특별히 아는 것도 없고 해서 샤토 어쩌구 하는 것을 주문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확인해 보니 그게 30만원짜리더라고요. 회장에게 바로 '당신은 요즘 비싼 것만 마시나봐'라는 핀잔을 들었습니다."

시중은행 PB인 C과장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최근 한 고객으로부터 저녁식사 초대를 받았습니다.

레드 와인을 한 잔 따라 주더군요.

워낙 적게 주길래 '원샷'을 했습니다." 그 순간,고객의 표정이 묘하게 일그러졌다.

그가 마신 술은 300만원을 웃도는 '샤토 라투르 1982'였던 것.

와인 애호가들이 늘어나면서 와인 시장이 급속히 커지고 있지만,그로 인해 직장인들의 스트레스도 덩달아 높아지고 있다.

관세청과 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와인 수입액은 8394만2500달러로 전년 대비 27%나 증가했다.

그러나 한국은 미국 일본 등 '와인 문화'가 발달한 나라들에 비해 똑같은 브랜드의 와인 값이 최고 두 배 이상 비쌀 정도로 가격 거품 현상이 심각하다.

와인 재료인 포도의 품종과 수확 연도,재배지와 주조업체 등에 따라 품질과 평판이 천양지차여서 일정 정도의 '공부'가 필요하다는 점도 스트레스 요인이다.

이 같은 사실은 한국경제신문이 최근 자동차,유통,식품,화학,금융,제약 등 국내 32개 대기업에 근무 중인 157명의 임원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에서도 드러났다.

73명(46%)이 '와인 스트레스를 경험한 적이 있다'고 답한 것.부사장 이상 고위 임원들은 100%가 '와인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고 답했다.

전두환 신한카드 부사장은 "금융업계에서는 와인은 영어처럼 반드시 배워야 할 글로벌 비즈니스의 필수품처럼 인식되고 있다"고 말했다.

젊은층도 마찬가지다.

한경 설문 결과 대기업 임원의 12.7%는 이미 와인 교육을 받고 있으며,48.4%는 와인 공부 계획을 세워 두고 있다고 응답했다.

직장인들 사이에서는 요즘 와인을 소재로 한 일본 만화 시리즈 '신의 물방울'이 폭발적 인기다.

독한 위스키나 폭탄주 대신 와인이 서서히 인기를 높여 가면서 또 한 가지 '학습 과제'가 등장한 것이다.

박동휘·장성호 기자 donghui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