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와인 애호가들이 늘어나고 있지만 와인 문화의 급속한 확산에 따른 부작용도 적지 않다.

'와인은 고급스러운 것'이라는 맹목적인 인식에 의해 '비싼 것'만을 찾는 초보 마니아들이 늘면서 와인 시판 가격에 지나친 거품이 끼어든 게 대표적인 예다.

미국에서는 10달러(약 9400원),일본에서는 1500엔(약 1만1700원)이면 '괜찮은 와인'을 사 마실 수 있지만 한국에서는 아무리 싼 것도 3만원이 넘는다.

와인에 대해 필요 이상의 '식견'을 요구하는 일부 행태도 문제로 지적된다.

상황에 맞춰 편하게 골라 마실 수 있는 정도를 넘어 '지식 자랑'으로 변질되는 경우가 적지 않고 이 같은 행태가 오히려 와인의 대중화를 가로막고 있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미·일보다 두 배 이상 비싼 한국 와인 가격

한국의 와인 값은 어느 정도 수준일까.

'샤토 탈보 2003'의 한국 내 판매가(현대백화점 압구정 본점)는 9만3000원인 데 비해 일본 신주쿠의 이세탄백화점에선 5700엔(4만4460원·100엔당 780원으로 환산)에 팔리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두 배 차이가 나는 셈이다.

미국과 비교해도 마찬가지다.

와인 수입사인 나라식품에 따르면 이탈리아산 '퀘르체토 키안티 클라시코 리제르바'가 국내에서 5만5000원에 거래되고 있는 데 비해 미국 내 권장 소비자 가격은 20달러(1만8800원·달러당 940원으로 환산)다.

똑같은 와인에 대해 이처럼 가격 차이가 큰 것은 복잡한 세금 및 유통 구조 때문이다.

관세,주세,교육세 명목으로 수입 금액의 53%가량이 붙고 다시 여기에 10%의 부가세까지 추가된다.

수입사는 이 금액에 검역비,라벨 관련 비용,창고 및 이동료 등 기본 비용과 20%가량의 마진을 붙여 도매상에 넘기고 도매상은 수입사가 매긴 금액에 30%가량의 마진을 더 얹어 소매 매장에 뿌린다.

칠레 현지에서 9달러(8100원)에 불과한 '몬테스 알파 카베르네 쇼비뇽'이 한국에서 3만8000원에 팔리는 이유다.

업계 관계자는 "레스토랑으로 가면 와인 값은 거의 폭등 수준"이라며 "특급 호텔 레스토랑 중에선 '몬테스 알파'를 20만원대에 판매하는 곳도 있다"고 전했다.

제대로 된 '하우스 와인(음식점 스태프가 선별한 가격 대비 품질이 좋은 와인)'이 없다는 점도 와인에 대한 체감 물가를 높이는 요인이다.

서인석 나라식품 팀장은 "미국과 일본은 와인을 글래스로 마시는 게 보편화돼 있고 레스토랑 주인들도 어떤 와인을 하우스 와인으로 쓸지 고심한다"며 "반면 한국에선 대부분 병째 마셔야 하고 하우스 와인이라는 게 거의 프로모션용 와인"이라고 말했다.

◆와인을 꿰야 폼 잡는다?

다른 나라에 비해 비싼 와인 값은 한국만의 독특한 와인 문화를 만들어냈다.

대표적인 게 '와인=상류사회''와인=지식상품'이라는 인식이다.

서한정 한국와인협회 회장은 "유럽 등 외국 생활 경험이 많은 임원들이 와인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 사례를 종종 보게 된다"며 "외국에선 소주 마시듯 편하게 와인을 마셨는데 한국에선 누가 만들었고 포도 품종은 뭐고 이것 저것 아는 체를 해야 하니까 불편해한다"고 지적했다.

한국 사람들이 비싼 와인을 좋아한다는 것은 이미 정평이 나 있다.

프랑스농식품진흥공사에 따르면 지난해(11월 누계) 수입된 프랑스 와인 중 일상 와인(테이블 와인)의 비중은 14%에 불과하다.

지난해 와인 수입액은 8394만2500달러로 전년 대비 27% 증가했다.

이철형 와인나라 대표는 "건전한 와인문화 정착이 시급하다"며 "주요 와인 소비층인 여성 전문 인력의 증가 등 한국에서 와인이 성장할 요인은 풍부한 편"이라고 말했다.

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